“아침 10시부터 시도했는데 오후 2시 넘어서야 겨우 성공했어요.”
서울시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4)씨는 29일 무순위 온라인 청약에 4시간째 매달린 끝에야 겨우 청약 신청을 완료했다. 그는 “홈페이지는 계속 먹통에 청약 신청 과정마다 오류가 나서 휴대폰, PC 등으로 로그인만 수십번을 한 것 같다”며 “청약 관련 커뮤니티를 보니 신청자가 20만명은 넘을 것 같다는 분위기더라. 일단 되기만 하면 ‘대박’이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당첨만 되면 수억원 시세 차익… 수십만 명 몰려 홈페이지 먹통
이날 오전 10시 DMC파인시티자이 무순위 온라인 청약이 시작됐다. 무순위 청약은 분양 계약 포기자나 청약 당첨 부적격자 발생한 경우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뽑는 것을 말한다.
이번 무순위 청약은 8층의 단 1세대(59A형, 구 24평형)만 해당된다. 서울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청약 신청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약통장이 없거나 이미 주택을 보유했더라도 상관없다.
DMC파인시티자이는 지난 8월 청약 당첨 커트라인이 65점에 달할 만큼 인기였던 터라 청약 열기도 뜨거웠다. 미계약분을 ‘줍는다’는 뜻의 ‘줍줍’족들이 대거 몰렸다. 신청 마감 기한인 오후 5시까지 약 2시간밖에 남지 않은 오후 3시가 될 때까지도 홈페이지 접속 오류는 계속됐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휴대폰으로 접속했더니 되더라”, “수십 번 오류났는데 계속 새로고침하니 성공했다” 등의 후기가 이어졌다. 접수번호를 기준으로 오후 3시 기준 이미 약 19만명의 신청이 있었다는 ‘인증글’도 눈에 띄었다. 홈페이지에 접속자가 몰리다 보니 오류가 잦았던지라 한편에선 “이쯤 되면 당첨보다 청약이 더 힘들다”, “고작 1채 갖고 브랜드 홍보 효과를 엄청 누린다” 등의 볼멘소리도 나왔다.
잦은 오류에도 수십만명의 신청자가 몰린 이유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발코니 확장비가 포함된 가격은 5억2643만원이다. 인접한 DMC롯데캐슬더퍼스트(1192가구)의 전용면적 59㎡의 분양권이 지난달 10억5000만원에 매매된 것을 감안하면, 당첨만 되도 약 5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로또청약’이라 불리는 이유다.
◆무순위 청약 경쟁률 껑충… 1가구 분양에 24만9000여명 몰리기도
이 같은 청약 열기는 올해 집값 상승과 전세난 등으로 ‘내집 마련’에 대한 욕구가 커진 상황을 반영한다. 특히 올해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지난해의 2배가 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과 부동산전문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11월27일까지 청약홈에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단지는 총 37곳으로, 평균 경쟁률이 44대 1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서 진행된 무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21.6대 1)의 두 배가 넘는다.
무순위 청약 경쟁률도 껑충 뛰었다. 청약홈에서 진행된 무순위 청약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단지는 지난달 23일에 나온 공공분양 물량인 ‘수원역 푸르지오 자이’(1만6505대 1)였다. 지난해 가장 높은 경쟁률은 257대 1(성남 e편한세상 금빛 그랑메종)과 비교하면 64배나 뛴 것이다.
청약홈이 아닌 자체 홈페이지를 통한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이보다 더 높다. 세종시에서 지난달 무순위 청약 물량으로 나온 ‘세종 리더스포레 나릿재마을 2단지’는 1가구 모집에 무려 24만9000여명이 몰렸다. 서울 성동구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8만8208대 1),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 자이’(3만3863대 1) 등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첨돼도 1억원 이상 현금 보유해야… ‘그들만의 리그’ 비판도
수십만 대 1의 경쟁률을 뚫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 편으론 오히려 ‘로또’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810만분의 1의 확률로 로또 1등에 당첨되길 기대하기보다 수십만분의 1 확률인 무순위 청약에 당첨돼 보장된 수억원의 차익을 올리는 게 현실적이란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1가구 무순위 청약에 수십만명이 몰리는 모습이 부동산 대책 실패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보장된다는 건 그만큼 집값 하락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청약 커트라인을 넘지 못해 내 집 마련에 좌절한 사람들이 줍줍족이 돼 ‘묻지마 청약’에 몰리는 것이다.
무순위 청약마저 결국 ‘현금부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첨 발표 이후 빠른 시간 안에 수억원의 계약금을 즉시 융통하지 않으면 당첨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이번 DMC파인시티자이도 당첨 결과가 30일 오전 10시에 발표되고, 계약은 이날 오후 1~3시 모델하우스에서 바로 이뤄진다. 약 5시간 안에 분양대금에 대한 계약금 1억260만원과 268만원의 별도품목에 대한 계약금을 마련해야 한다. 당일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비 당첨자로 순서가 넘어간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경쟁률이 수십만 대 1이라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은 사실 허수라 봐도 무방하다. 내 집 마련에 욕구가 큰 서민들이 아무 조건도 없다고 하니 한 번 청약 신청이라도 해보는 것”이라며 “당장 그 날 1억원 넘는 현금을 계약금으로 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