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생후 16개월 영아가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여성변호사회가 “가해 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고 4일 촉구했다.
여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에서 가해 부모를 살인죄로 의율(법률을 구체적 사건에 적용)함과 더불어 아동학대 사건에서 초동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생후 16개월의 피해 아동이 긴 시간 동안 고통을 참아내다 장기 파열 등으로 사망에 이르기까지 공권력은 철저히 무력했다”며 여러 차례 학대 의심 신고에도 초동조사 부실 지적을 받는 경찰을 비판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3차례의 학대 의심 신고를 모두 내사종결 혹은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변은 “이런 비극은 정인이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2018년에만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총 28명이고, 아동학대 사건의 약 80%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정이라는 은폐된 울타리 내에서 훈육을 명목으로 학대받는 아동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여변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심 사건의 초동조사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아동학대 전문 공무원이 주로 담당하는데, 지난해 11월 기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00곳에만 배치돼 목표치의 69% 수준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행정직원이 순환 배치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변은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인이와 같은 피해 아동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의 아동학대 조사기능 활성화를 위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인력 확충, 전문성 강화, 견고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폭적 예산 지원과 아동학대 범죄 신고 접수 시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적극 협조 및 수사를 개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양은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숨을 거뒀다. 지난해 10월13일, 생후 16개월이던 정인양은 서울 목동 한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사망 당시 정인양의 쇄골·늑골은 부러져있었고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 손상과 복강 내 출혈도 심각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양모 장모씨를 정인양을 상습 폭행·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치사) 등으로 구속기소 했으며, 이를 방조한 양부 양씨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 ‘양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달 20일 동의 수 23만명을 넘기는 등 공분을 일으켰다. 또 온라인을 중심으로 가해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정인이 진정서’ 작성 방법을 공유하고, 1차 공판기일 전까지 재판부에 진정서를 보내줄 것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이는 등 사회적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인이 사건을 조명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제안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도 정치권과 연예계 등 각계각층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협회는 “양부모에게 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하고, 제대로 조사해 조치하지 않은 관련 기관들의 행태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챌린지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