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아이가 양모의 상습적인 폭행·학대로 사망에 이른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검찰은 양모 장모씨에게 살인 혐의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는데,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살인 혐의냐, 아동학대치사 혐의냐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수사과정서 전문수사자문위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당시 생후 16개월이었던 정인양은 양모의 상습적인 폭행으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정인양은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이후 꾸준히 학대를 당했고, 입양 271일 만에 하늘로 떠났다. 입양 이후 어린이집 교사 등이 세 차례나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그때마다 내사 종결 혹은 무혐의 처분을 내려 골든타임을 놓쳤다.
사건을 조사한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해 12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장씨를 구속기소했다. 구속기소 직후엔 적용 혐의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정인양이 부모의 장기적 학대로 사망했음에도 살인 혐의가 적용되지 않아서다.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적용되면 장씨가 받게 될 징역형은 급격히 낮아진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의 기본 양형기준은 10~16년이지만 아동학대치사의 기본 양형기준은 4~7년에 불과하다.
검찰이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건 장기간 학대로 사망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양부모가 이를 막지 않았다는 ‘미필적 고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해서다. 살인죄를 적용하면 재판부가 살인 혐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도록 검찰이 법정에서 증명을 해야 하는데 현 상태로는 이 같은 증명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동학대 사건 적용 혐의를 둘러싼 논란은 항상 있었다. 지난해 6월 여행 가방에 동거남의 아들을 가둬 숨지게 했던 사건에서도 살인 혐의가 적용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는데, 검찰은 동거녀 성모(42)씨가 가방을 압박, 밀봉했던 점을 바탕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결국 혐의 적용은 사건 담당 검사의 몫인 만큼 검찰이 수사과정서 전문수사자문위원 제도 등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전문수사자문위원 제도는 검사가 공소제기 여부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자문위원으로부터 자문을 듣는 제도다. 대검 차장을 지낸 바 있는 봉욱 변호사는 “(반복되는 논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전문수사자문위원들을 위촉해 판단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인양 사건의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여변은 “이번 사건의 가해부모에 대해 살인죄를 의율(적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며 “언론에 보도된 정인이의 피해, 현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변은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인력 확충과 전문성 강화, 견고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폭적 예산 지원, 그리고 아동학대범죄 신고접수 시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적극 협조 및 수사를 개시해달라”고 덧붙였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