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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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진료했던 의사 “15개월 아기가 체념한 듯한 표정”

전문의 “세 번 신고 들어갔다면 물증 없어도 조치 취했어야
사실 아닐 가능성 99%라도 가능성 1% 무게 두고 접근해야”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정인이의 그림이 놓여있다. 양평=뉴시스

정인이를 진료하고 아동학대로 신고했던 소아과 전문의가 “이런 얘기가 15개월 아기한테 맞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념한듯한 그런 표정이었다”고 회상했다.

 

5일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익명으로 출연한 이 전문의는 “너무 전신상태는 늘어져 있었고 어른들로 치면 자포자기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인이가 숨지기 20일 전에 진료했다. 

 

지난해 1월부터 예방접종 등 8~9회 정도 정인이를 진료한 이 전문의는 당시 상황에 대해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오랜만에 등원을 한 정인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인다고 하시면서 우리 병원에 데리고 오셨다”며 “약 두 달 정도 만에 정인이를 본 상황이었는데 그 전과 비교해 너무 영양 상태나 전신상태가 정말 불량해 보였고 진찰 소견상 어떤 급성질환으로 인한 일시적 늘어짐이나 이런 게 아닌 거로 판단했다”며 운을 뗐다.

 

아울러 그는 “입안에 난 상처도 있었고 이미 5월에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아동학대 신고를 하셨을 때 아이 허벅지 안쪽에 멍 자국에 대한 학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과 아동보호기관 관계자, 양부모가 병원에 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인이에 대해선 지난해 5월, 6월, 9월 총 세 차례에 나뉘어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었다.

지난 4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를 한 어린이가 찾은 모습. 양평=연합뉴스

아동학대 신고 경위에 대해선 전문의는 “6월경에도 왼쪽 쇄골 부위가 부어 있는 것 때문에 정인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오신 적 있다”며 “7월쯤 예방접종하러 우리 병원에 엄마가 데리고 오셨는데 구강 내에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깊고 큰 상처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런 진료내용이 있었던 차에 9월 23일 정인이 모습을 보니까 마치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심각한 아동학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신고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동학대 신고 이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설사 그게 조사과정에서 법적인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며 “아동학대는 사실 아닐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 그런 사안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양부모에 대해선 “태도에선 제가 참 저도 전혀 제가 아동학대를 하실 분처럼 보이진 않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어른들이 과연 아동학대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며 “도를 넘는 심각한 체벌인데도 아이를 위한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고 학대가 아니라고 잘못 생각하는 어른들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인이는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숨졌다. 이후 온 국민은 이러한 사실에 분노했고 일부 국민들은 정인이가 묻힌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양모인 장모씨는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첫 공판은 오는 13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