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판이 열리는 13일의 일주일 전인 6일까지 진정서가 법원에 도착해야 합니다. 1만개 정도 돼야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입양 가정에서 학대를 받다 사망한 ‘정인이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양부모 엄벌 진정서 제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진정서 작성 요령과 제출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부정확한 정보가 확산돼 혼란스럽다. 진정서 제출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확인해봤다.
◆공판 일주일 전까지 도착한 진정서만 효력 있다 → 전혀 사실 아님
정인이 사건 진정서 제출과 관련해 온라인에 퍼진 잘못된 정보 중 하나는 ‘첫 공판 일주일 전인 6일까지 진정서가 도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이 같은 내용의 진정서 작성법이 널리 공유되면서 많은 사람이 3000∼1만원가량의 비용을 내고 익일특송이나 당일특송을 이용해 진정서를 보냈다. ‘일반 우편으로 보낼 경우 늦어서 진정서가 소용이 없어진다’는 글도 많이 퍼졌다. 그러나 실제로 진정서는 선고기일 전에만 법원에 도착하면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인이 사건의 경우 오는 13일 첫 공판이 시작되며, 선고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예정이다.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관계자는 “선고하기 전날이나 당일도 접수를 한다. 일반적으로 선고 전까지 들어온 서류는 다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고 이후에 들어온 진정서도 사건이 항소심으로 넘어갈 때 항소심 재판부로 다 보낸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장윤미 변호사는 “통상 판사들이 선고 일주일 전부터 판결문 집필에 들어가는 것을 감안해 법조계에선 ‘선고 일주일에서 열흘 전에 진정서를 보내야 한다’고 말하기는 한다”며 “이게 와전돼 (재판 시작) 일주일 전까지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1만통 이상 접수돼야 유효하다 → 전혀 사실 아님
‘진정서가 1만통 이상 접수돼야 효력이 있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 현행 법률에 진정서 관련 규정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효력이 발생하는 기준점도 정해진 바 없다. 진정서 보내기 운동을 주도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과거 ‘울산 서현이 사건’ 때 접수된 진정서가 1만1000여통이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진정서가 많이 접수될수록 법원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의견은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도 국민정서나 사회적 기류와 여론 등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양의 진정서가 들어간다면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서·탄원서가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 → 절반의 사실
진정서나 탄원서는 읍소하는 성격의 민원성 서류여서 명시된 법적 효력은 없다. 따라서 법리 해석이나 유무죄 여부 등 법률적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진정서가 양형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진정서가 국민 여론을 반영하는 만큼 양형 등 재판부의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는 재판부의 재량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영관 변호사는 “형사 재판의 양형은 사안의 중대성이나 피고인에 대한 처벌 필요성 등을 고려하게 된다”며 “정인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사는 상황에서 강한 처벌을 원하는 진정이 쇄도한다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남부지법은 “재판부가 증거를 다 보고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기 전까지는 (정인이 사건) 진정서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건에서 무죄추정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얘기”라며 “(유무죄 판단 후) 선고 이전에는 진정서 등 모든 기록을 당연히 볼 것이고 양형에 참고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