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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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만에 나온 첫 판결… “위안부 제도, 반인도적 불법행위”

法 “日, 원고들 정신적 고통 배상 의무 있어”
인권 침해 심각… 주권면제 원칙 적용 안 해
8일 김강원 변호사가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한민국 법원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6년 만에 나온 국내 법원의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8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1억원씩을 지급하라’며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위안부 제도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피고는 이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피고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는 적어도 원고들에 대해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일본군이 침략전쟁 과정에서 자행한 위안부 제도를 호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일본제국은 군인들의 사기 진작 및 민원 발생의 저감, 효율적 통솔을 추구하기 위해 이른바 ‘위안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며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꾸짖었다.

 

이어 “10대 초중반에서 20세 남짓에 불과해 미성년이거나 갓 성년이 된 원고들은 위안부로 동원된 이후 일본제국의 조직적이고 직·간접적인 통제 하에 강제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일본 군인들의 성적인 행위 대상이 됐다”며 “원고들은 가혹한 성행위로 인한 상해, 성병, 원치 않은 임신, 안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산부인과 치료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상시적인 폭력에 노출됐으며 제대로 된 의식주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모습. 뉴스1

이번 재판의 쟁점은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을 위안부 관련 재판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위안부 제도로 인해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주권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위안부 제도는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천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원고 측이 주장하지 않은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렸다. 일본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 합의를 통해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주장을 하는 데 대한 반박이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 양국 간의 1956년 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