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개무량하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가 고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1억원씩 지급하라’며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판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그간 당했던 것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오늘 재판 결과가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보다 파장이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2018년 판결보다 오늘 판결이) 어떻게 보면 더 큰 파장이 있을 지도 모른다”며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1945년 패망한 뒤 아직까지 이렇게 반인도적이고 반문명적인 걸 해결조차 안 했다”고 비판했다.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지만 2013년 8월 민사조정을 신청한 이후 7년5개월 만에 나온 판결이다보니 소송을 제기했던 12명의 할머니 중 7명은 작고한 상태다. 살아있는 5명 중 인지가 가능한 할머니는 2명이다.
할머니들은 1억원 배상 판결을 듣고 “수십 배를 줘도 모자란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단순히 손해배상만으로는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치유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소송을 함께 진행했던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은 “할머니들은 배상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는다”며 “사죄와 함께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자국민에게 알려서 전쟁범죄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나눔의집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온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섯 분이 생전에 일본국의 배상판결을 받게 돼서 뜻깊은 날”이라며 “오늘 판결이 비록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지만, 일본정부가 앞으로 사과하고 배상하는 역사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 의원은 “할머니들께서는 늘 한을 풀어달라고 하셨다”며 “한은 바로 일본의 진실된 사죄와 할머니들의 동의한 배상”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도와온 정의기역연대는 이번 판결을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의 인권존중원칙을 앞장서 확인한 선구적인 판결”이라며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성심껏 귀 기울여 인권의 최후 보루로 책임을 다한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이사장은 “일본국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기념비적 판결”이라며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20세기 최대 인권침해 범죄로 꼽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정어린 사죄와 추모, 지속적인 진상규명, 올바른 역사교육에 나섬으로써 전면적인 법적 책임 이행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