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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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안 풍경 30년 기록, 서울역사박물관 품으로

김기찬 작가 유족, 필름 10만여점·사진·육필원고 등 기증
1968년 염천교 주변을 시작으로
중림·도화동 등 곳곳 풍경 렌즈에
개발 이전 강남·변두리 모습 이채
모든 자료들 수장고에 영구 보존

“서울 토박이인 그와 나뿐만 아니라 그 후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무수한 서울 토박이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근원을 잊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향과 가족, 삶과 이웃이라는 영원히 어려운 우리의 문제를 두고두고 돌아보게 하는, 잃어버린 앨범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공지영 작가가 고 김기찬(1938∼2005·사진) 사진작가의 유고 작품집 ‘골목안 풍경 전집’(눈빛)에 상찬한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기찬 작가는 1968년 서울역 염천교 주변을 시작으로 2005년 8월 68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 공덕동, 문래동 등 지난 30여년간 서울 곳곳의 골목 풍경과 변화상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김기찬 작가 사진은 고도성장시기 급변하는 서울의 모습이 아니라 후미진 골목 사람들의 모습과 따뜻한 정,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 작가는 생전 “삶이 힘겹고, 딛는 땅이 비좁고 초라해도 골목안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서로를 아끼는 훈훈한 인정이 있고 끈질긴 삶의 집착과 미래를 향한 꿈이 있다”고 말했다. 신경숙 작가는 “그의 사진 한장 한장은 인간적인 것에 결핍되어 있던 마음을 해원시켜 주는 굿판처럼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최근 김기찬 작가 유족으로부터 그의 필름 10만여점과 사진, 육필원고, 작가노트 등 유품 일체를 일괄 기증받았다고 10일 밝혔다. 필름 중에는 그동안 사진집이나 전시회 등에서 공개되었던 골목안 풍경사진들뿐 아니라 개발 이전의 강남 지역과 서울 변두리 지역 사진 등 미공개 자료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고인이 1980년대 초반 송파구 석촌동과 문정동, 오금동 등에서 찍은 사진들이 이채롭다. 1981년 11월 석촌동에서는 추수가 끝난 논에서 아이들이 어우려져 놀이(사진 ①)를 하고 있고, 1984년 10월 오금동에서는 신축된 아파트단지 인근에서는 연날리기(사진 ②)가 한창이다. 1988년 중림동 골목 안에서 당시 유행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을 따라하는 아이들 모습(사진 ③)도 아련한 향수를 일으킨다.

배현숙 서울역사박물관장은 “김기찬 작가의 사진은 도시 서울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기록자료로서도 풍부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에 따르면 김기찬 작가 유족은 지난달 크리스마스 직전 박물관을 직접 찾아와 유품 기증의 뜻을 밝혔다. 유족은 “고인의 사진과 기록이 서울의 소중한 기록으로 보존되길 바란다”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유족 측이 △적절하고 체계적인 자료 보관 및 관리 △서울 골목 변화상에 관한 다양한 연구 및 활용 등을 기대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에 따라 기증된 모든 작품 및 자료를 박물관 수장고에 영구 보존할 예정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중림동 등 서울 골목길 풍경 이외에 강남개발 모습 등 지난 30여년간 서울의 변화상을 담은 작품들이 상당하다”며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 이후엔 유족과 상의해 김기찬 작가 기획전 등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