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서울시장 주자들이 본격적인 선거전을 앞두고 약점 보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오랜 정적과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정치적 트라우마 해소에 적극 나선 모습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대표는 지난 9일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찾은 데 이어 11일 대구에서 무소속 홍준표 의원과 조우했다. 홍 의원과는 이미 서울시장 출마선언 전에 만나 조언을 들었다.
김 교수와 홍 의원 모두 전통적 보수로 분류되고 안 대표에게 막말을 퍼부은 적도 있다.
중도 아이콘을 자처해온 안 대표의 파격 행보는 자신에 대한 영남과 보수층의 부정적 정서를 씻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안 대표는 지난 대선 레이스 때 영남의 성원으로 한때 지지율 선두로 올라섰다가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박지원이 상왕 노릇을 한다'는 민주당의 네거티브 프레임이 작동하면서 3위로 주저앉았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당 쇄신 작업이 일각에서 '좌클릭'으로 규정된 가운데 안 대표가 '우클릭' 행보로 대척점에 서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5일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장애를 가진 딸과 함께 출연했다.
'서울 법대 출신 판사', '새침데기 금수저 미녀'라는 고착된 이미지를 벗으려는 과감한 시도였고, '강남 피부과 시비'를 털어냈다는 반응도 얻을 만큼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 전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야권통합 후보인 박원순 후보와 맞섰다가 '연 1억짜리 피부과에 다닌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큰 표차로 패했다.
경찰은 "나 후보가 낸 돈은 550만원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이후에도 많은 유권자는 사실관계보다 나 전 의원의 이미지에 주목해온 게 사실이다.
나 전 의원은 13일 출마 선언 전 홍준표 의원과도 만나기로 했다. 홍 의원과의 해묵은 감정의 골을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안 대표가 오는 18일 전까지 입당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힌 뒤 안 대표 측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10년 전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로 시장 진퇴의 승부수를 걸었는데, 이번에 다시 '조건부' 출마를 내걸어 자신의 정치적 트라우마를 정면 돌파하려는 모양새를 보인다.
오 전 시장은 김종인 위원장이 "말도 안 되는 출마 선언을 했다"고 평가절하했지만,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존중해달라"고 요청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애초 이번 주 안 대표와 만나기로 했지만, "다음에 보자"는 안 대표 측의 요구로 회동은 일단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주요 주자들이 하루하루 의미심장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며 "물밑에선 이미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