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12일(현지시간) 지난 6일의 의회 의사당 유혈사태 책임을 물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박탈을 위해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할 것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이 이를 거부함에 따라 의회는 탄핵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공화당 의원들마저 속속 트럼프 대통령에 등을 돌려 하원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확실시된다. 이제 세계 시선은 탄핵심판권을 쥔 상원에 쏠린다.
미 하원은 이날 오후 수정헌법 25조 발동을 부통령에게 요청하는 결의안을 찬성 223표, 반대 205표로 통과시켰다. 이 조항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부통령이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의회는 분열을 심화하고 격노에 불을 붙이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며 “지금은 치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제 남은 것은 탄핵뿐이다. 미 하원은 13일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을 유도하는 등 반란을 선동한 혐의로 발의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한다.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도 상당수 찬성표를 던질 예정이어서 무난히 하원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가결 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중 두 차례 하원 탄핵소추를 당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2019년 12월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비롯한 1차 탄핵안 표결 시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 명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상원에서만 밋 롬니(유타) 의원이 탄핵안에 찬성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원에서 공화당 서열 3위인 리즈 체니(와이오밍, 의원총회 의장) 의원, 존 캣코(뉴욕), 애덤 킨징어(일리노이), 프레드 업턴(미시간) 4명의 의원이 탄핵 지지를 선언했다. CNN은 공화당 하원의원 중 10∼25명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상원이다. 탄핵 확정에는 상원 재적의원(100명)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현재 공화당이 50석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다만 미 정가에 ‘탈(脫)트럼프’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상원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상원의 공화당 1인자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만한 행동을 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측근들에게 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매코널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이 그를 공화당에서 쫓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 온 미 합동참모본부도 이날 이례적으로 의회 난입 사태를 규탄하면서 “조 바이든 당선인이 곧 군 통수권자가 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충성 맹세’인 셈이다. 미 합참은 이날 전군에 내린 지침에서 의회 난입 사건을 의회와 의사당, 헌법적 절차에 대한 직접적 공격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의사당 폭력사태 후 처음 공개 행사에 참석해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며 의회의 직무박탈 및 탄핵 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주 알라모의 멕시코 국경 장벽을 방문해 행한 연설에서 “수정헌법 25조가 내게는 전혀 위험 요인이 되지 않지만, 조 바이든과 바이든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