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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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갱신청구권 쓰실 건가요”… 집주인·세입자 ‘눈치싸움’ 치열

사진=연합뉴스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을 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약 6개월이 흘렀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은 여전하다. 교묘히 법망을 피해 전세금을 올리거나 집을 매도하려는 임대인과, 최대한 전세 기간을 연장하려 하는 임차인 사이에 신경전과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내달 13일부터 공인중개사가 세입자 있는 주택 매매를 중개할 때 의무적으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매도인으로부터 확인하도록 하는 시행규칙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세입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계약갱신 청구권 쓸까 말까” 아직도 혼란스러운 임대차 시장

 

“일단 집주인한테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세요.” 

 

전세계약 만료를 5개월 앞둔 직장인 윤모(34)씨는 최근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쓴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문의글을 올렸다가 이를 만류하는 다수의 댓글을 받았다.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아껴두고 ‘묵시적 연장’이 되길 기다리라는 조언이다. 

 

한편에선 “일부러 계약갱신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갑자기 임대인이 이사를 요구하며 위로금을 준다고 해 고민”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근 GTX 착공 등의 특수로 주변 전셋값이 1년 사이 2억원가량 오른 터라 집주인이 이사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제시하며 이사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해당 누리꾼은 “요즘 전셋값이 너무 올라 전세금에 1000만원을 보태도 근처에 이사할 곳이 없다”며 “집주인 등쌀에 눈치가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약 기간을 채우고 계약갱신청구권까지 쓸 생각”이라고 씁쓸해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세입자를 내보내려고 집주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고민글도 눈에 띈다. 한 누리꾼은 “분명 집주인이 딸밖에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들이 들어와 살 테니 집을 비워달라’고 하더라”며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중과되는 6월1일 전에 집을 팔려고 거짓말하는 것 같다. 사실이 아닌 걸 알게 되면 피해보상 청구는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이사는 가야 하니 막막하다”고 답답해했다. 임대인이 직계가족 거주 등 허위 사유로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한 후 갱신 기간(일반적으로 2년) 안에 제 3자에게 임대하거나 매도 시 기존 세입자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 

 

임대인들도 ‘눈치싸움’을 벌이는 건 마찬가지다. 임대인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를 끼고 매도할 생각인데 세입자에게 계약 갱신할지 일찌감치 물어봤다가 별생각 없던 세입자가 갱신하다고 할까 걱정이다”, “연장 안 한다고 한 세입자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 못했는데 문자로 은근슬쩍 다시 확인해봐야 하나 고민”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임대차계약서에 ‘2년 뒤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특례를 넣어도 되냐는 문의도 이어졌다. 이러한 특례를 계약서에 넣더라도 임대차법에 저촉돼 무효다. 

 

◆내달 13일부터 매매계약서에 계약갱신청구권 확인해야… 선택 강제 불가

 

이처럼 시장에 혼란이 계속하자 정부는 주택 매매계약 서류에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기재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오는 2월13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중개사가 주택 매매를 중개할 때 매도인으로부터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확인하는 서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공인중개사협회가 배포한 확인 서류 양식에 따르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기행시 △행시 △불행시 △미결정 등으로 구분해서 표기하도록 했다. 만약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경우 현재 임대차기간과 갱신 후 임대 기간을 함께 적어야 한다. 서류에는 임대인 혹은 매도인의 확인 서명란도 있다. 더불어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도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표시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제공

이번 조치로 매매계약의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도 크지만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미결정’한 경우는 어쩔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택을 강제할 규정이 없으며 이에 따른 위험 부담은 임대인과 매도자가 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13일 “이번 시행규칙에 따르면 집주인은 집을 매매하기 전에 어떻게든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당위성 차원에서 보자면 거래 안전을 위해 이 부분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임차인의 의사가 ‘미결정’인 경우는 현실적으로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미결정은 임대인이 임차인을 만나지 못해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할지 말지 알 수 없다”며 “매매계약 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어서 매수자가 이를 알고 본인이 감당하겠다고 해야 계약이 성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의사 확인 관련해 책임 소재가 중개사가 아닌 임대인에게 있다고도 강조했다. 관계자는 “확인 서류에 임대인이 서명∙날인하므로 임차인의 문제로 매매계약에 차질이 생긴다면 이 확인서를 제출한 임대인 쪽에서 문제를 진다”고 밝혔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