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부진 속에 생활자금 마련과 집값 급등, 전세난, ‘영끌’, ‘빚투’로 대표되는 주식투자 열풍까지 겹친 지난해 은행 가계대출이 2019년 말에 비해 100조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가계대출이 10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은 처음으로,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2020년 12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988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12월 말에 비해 100조5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2004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 포함)과 기타대출(신용대출 등)의 지난해 말 잔액은 각각 721조9000억원, 266조원으로 1년 사이 68조3000억원, 32조4000억원씩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은 2015년(70조3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증가 규모이며, 기타대출은 사상 최대 증가 기록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전반적으로 주택매매가 많이 늘었고, 각종 생활자금 수요, 공모주 청약, 자금 수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12월만 떼어놓고 보면 가계대출이 6조6000억원이 늘었다. 한 달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이었던 11월의 13조7000억원에 비해 증가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신용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대출 증가액이 11월 7조4000억원에서 12월 4000억원으로 급감했다. 11월 말 시행된 가계대출 조이기의 효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6조3000억원으로 11월(6조2000억원)보다 오히려 1000억원 늘었다. 매년 12월 기준으로는 2004년 속보 작성 이래 최대 증가폭이다.
전국적인 집값 급등에 전세난이 겹치자 비수기인 12월마저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이 한 달 새 2조8000억원 증가해 지난해 2월(3조7000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웠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지난해 말까지 집값과 전세가 상승이 계속됐고, 연말 가계 대출 부담도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은 집단대출 취급 둔화에도 불구하고 전국 주택 매매 및 전세 관련 자금수요가 늘어나면서 전월에 이어 상당폭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이날 발표한 ‘12월 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8조5000억원 증가했다.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은 4000억원,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1조4000억원 늘었다. 전월의 18조7000억원에 비해서는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12월 주춤했던 신용대출은 올해 들어 다시 늘어나는 상황이다.
기업 대출도 2009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기업의 은행 원화 대출 잔액은 976조4000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107조4000억원 많았다.
한편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은 전월과 같은 0.34%였다. 전년 동월과 대비해 0.14%포인트 내린 수준이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