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JTBC에서 방송된 ‘제35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걸그룹 ‘오마이걸(OH MY GIRL)’은 자신들의 노래 ‘살짝 설렜어(Nonstop)’ 무대를 선보였다. 오마이걸은 이 노래로 디지털 음원 부문 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 수상 소식보다 눈길을 끈 것은 오마이걸 무대 의상이었다. 오마이걸은 분홍색과 흰색, 녹색 등 다양한 색상의 저고리와 치마 등 한복을 재해석한 의상을 입었다.
‘한복’스러운 의상으로, 아이돌 가수들이 이러한 의상을 입은 건 이들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2월 18일 방송된 ‘2020 KBS 가요대축제’에서 걸그룹 ‘마마무(MAMAMOO)’도 검정과 빨간색이 조화를 이룬 한복스러운 의상을 입었다.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는 지난해 6월 신곡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발표하면서,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스러운 의상을 선보였다. 제니는 봉황문 도포를 춤추기 편하도록 길이를 조절해 저고리처럼 변형한 의상을, 로제는 가슴 가리개와 조선 시대 무관의 옷인 철릭을 변형한 의상을 입었다. 지수는 노리개를 견장처럼 장식한 미니 드레스를, 리사는 한복 저고리와 태국 전통 의상을 조합한 의상을 착용했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수 2억뷰를 돌파하면서 인기를 끌었고, SNS에서는 멤버들이 입은 의상을 따라 하는 유행도 생겼다.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도 2018년 ‘아이돌(IDOL)’ 뮤직비디오에서 전통 기와 무늬를 새겨 넣은 의상을 선보였다. 멤버 슈가는 지난해 5월 솔로곡 ‘대취타’ 뮤직비디오에서 흑룡포를 입었다.
이처럼 아이돌 가수들이 한복스러운 의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최근 우리나라 전통 의상인 한복이 변하고 있다. 개량한복 수준이 아니라, 2030대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아이돌 가수들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주도하는 한복의 변화는 해외에도 관심을 가질 정도다.
다만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아이돌 가수 성격상, 이들이 입는 의상은 화려한 색상에 짧고 간편한 디자인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서구적 시점에서 재해석된 디자인을 차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들이 입고 선도하는 ‘변화된 한복’이 과연 ‘우리 전통 한복’인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복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나타내는 의상이다. 옷이 길어지거나 짧아졌고, 화려한 색상의 옷감을 사용하거나 문양을 넣지 않는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부 변형됐다. 이러한 변화에도 기본적인 요소는 그대로 유지했다. 여성 한복의 기본은 저고리와 치마이며, 그 밖에 신발과 버선, 허리띠 등 부속품을 갖춰 옷차림을 완성한다. 남성 한복 기본은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겉옷인 포(긴 외투)이며, 그 밖에 신발과 버선, 허리띠, 모자 등 부속품을 갖춘다.
‘한국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한민족을 뜻하는 핵심 의미가 변하지 않았듯, 한복도 한복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켜왔다. 단순히 ‘한민족이 입는 의복’이 아니라 ‘한민족 고유한 의복’이란 의미를 유지한 것이다.
서울시무형문화재 11호 침선장(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장인) 이수자이자 사임당바이이혜미 대표인 이혜미 한복디자이너는 “한복이란 우리 조상이 입었던 전통 의상으로, 어느 누가 봐도 한복이라고 느껴지는 옷”이라며 “그런 면에서 아이돌 가수들이 입는 옷은 한복이라고 볼 수 없다. 한복에서 모티브를 받은 패션 의상”이라고 설명했다.
아쟁 연주자 출신으로 전통예술 플랫폼 모던한(modern·韓)의 조인선 대표도 “‘한복’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만, 아이돌 가수들의 의상은 그런 것들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아이돌 가수들이 한복스러운 의상을 입어서) ‘한복’이라는 키워드가 온라인에서 계속 언급되면서 한복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으며, 조 대표는 “삼겹살 등 맛있고 접하기 쉬운 음식을 시작으로 한식을 배우는 것처럼, 아이돌 가수 의상으로 한복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전통 한복의 적극적인 이용과 홍보, 한복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아이돌 가수들이 한복을 콘텐츠로 이용했다면 토크쇼 등 정적인 자리에서는 무대 의상과 별도로 제대로 된 전통 한복을 입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조 대표는 “일본 전통 의상도 기능이나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정의한다”며 “한복도 신한복, 개량한복, 실용한복, 패션한복 등으로 분류해 표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