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53) 삼성전자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측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양형에 반영하기로 한 것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재판부가 ‘실효성 부족’ 판단을 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18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건넸다가 돌려받은 말 ‘라우싱’ 몰수를 명령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이 부회장은 바로 법정에서 구속됐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차장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는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측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회삿돈으로 뇌물 86억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는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를 따른 것이다.
이로써 이 부회장이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사건의 재판은 처음 검찰 조사를 받은 지 4년여 만에 사실상 마무리됐다. 파기환송 전 1·2심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포함하면 이번 사건에 관한 선고는 네 번째다. 박영수 특별검사와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하고 다시 상고하면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거친 만큼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판결로 ‘국정농단 공모자’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 이후 내부 준법감시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총수 구하기’에 총력을 기울였던 삼성 측도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파기환송심의 양형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었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에 대해 재판부는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에서 양형 조건에 참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봤다.
이 부회장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인재 변호사는 선고 후 “이 사건의 본질은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재판부의 판단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부정한 재판부의 판단과 재상고 여부에 관련해서는 “판결을 검토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삼성 측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펼쳐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해 10월 별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달아 악재가 겹치며 오너 리스크가 전면으로 부각되는 모양새다.
이번 판결과 별개로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 재판은 계속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바 있다.
김선영·이희진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