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난해 세대 수 급증, 즉 공급을 뛰어넘는 수요 증가를 지목했지만 잘못된 분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예년보다 세대 수가 많이 늘었지만 대부분 아파트의 주수요층이 아닌 ‘1인가구’로,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을 견인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 “지난해 61만 세대수 증가… 유례없어”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공급은 충분했다’는 입장은 견지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기간 주택 공급 물량이 과거 정부보다 더 많게 설계돼 있었다”며 “추가로 요구되는 물량은 3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 127만호 추가 공급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공급이 어느 정도 되리라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연유를 생각해보니 저금리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져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렸다”며 “그에 더해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했는데도 무려 61만 세대가 늘었다. 예전에 없던 세대수의 증가”라고 설명했다. 2019년 18만 세대, 2018년에는 2만 세대가 늘었던 것과 대조적이라고도 덧붙였다. 다만 세대수가 갑자기 폭증한 이유에 대해선 “앞으로 분석해봐야 한다”고 했다. 결국 부동산 공급은 충분했으나 전례없는 세대 수 증가가 부동산 폭등의 원인이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61만 세대 증가 중 93%가 1인가구
실제로 문 대통령 언급대로 지난해 인구가 감소했음에도 세대수는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주민등록 세대 수는 2309만3108세대로, 전년보다 61만1642세대(2.72%) 증가했다. 반면 전체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2019년도 말보다 2만833명(0.04%) 감소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1인가구의 증가다. 지난해 1인가구는 2019년보다 57만4741세대가 늘어 문 대통령이 언급한 ‘61만 세대’ 중 93%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1인가구는 총 906만3362세대로 전체 가구의 39.2%를 차지한다.
◆전문가 “1인가구 아파트 주 수요층 아냐… 정부 분석 안 맞아”
전문가들은 단순히 ‘세대수 증가’로 인해 지난해 집값이 올랐다는 설명은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부동산 시장은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이 전국 집값을 끌고 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1인가구가 수도권 아파트 주 수요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통계상 아파트는 30평대가 기준”이라며 “만약 신혼부부가 많아져 2인 가구 이상이 증가해 수요가 늘었다고 한다면 정부의 설명이 이해되지만 그게 아닌 이상 분석 자체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세대 수 증가’ 거론이 정부가 설 연휴 전 내놓겠다고 예고한 ‘특별공급 대책’을 위한 고도의 밑 작업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1인가구 증가를 이유로 정부가 원룸 등 소형 주택 공급량을 대폭 늘려 전체 숫자를 ‘뻥튀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연구소장은 “지난해 ‘로또 아파트’ 등으로 청약 열기가 거셌다. 세대주가 돼야 청약 1순위가 되니 많은 사람이 세대 분리를 한 것도 일부 요인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세대 분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세대 구성을 보면 3인 이상은 줄었는데 1~2인 세대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지난해 수도권으로 인구 이동도 좀 증가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문 대통령이 집값 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한 ‘유동성 증가’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전세계적인 금리 인하로 유동성 증가가 수년간 심화해왔던 걸 미뤄보면 지난해 집값 상승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며 “정부가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전날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 전에 특단의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의 예로 변 장관이 이미 예고했던 공공재개발, 역세권 개발, 신규 택지의 과감한 개발 등을 언급, 새로운 대책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