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비호감 K푸드 1위로 소주가 선정됐다. 국가 브랜드가 계속 올라가는 가운데,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외국인은 한국의 소주에 등을 돌렸을까? 실은 나조차도 소주는 늘 불편하다. 소주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부터 강압적이었다. 소주는 잔에 따르면 무조건 한 번에 다 마셔야 했다. 반만 마셔도 꺾어 마신다고 욕을 해댄다. 그래서 회사 상사나 선배와의 소주 자리는 무조건 도망을 다녔다. 기분 좋게 마셔야 하는 술이 곤욕의 술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술은 나쁜 것이라고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소주는 맛도 너무 획일적이다. 소주를 고르는 재미가 없다. 맛이 같은 주정을 주원료로 쓰기 때문이다. 주정의 원료는 농산물이다. 타피오카로 만들기도 하지만, 쌀, 감자, 고구마, 보리, 밀가루 등 다양한 잉여 농산물이 주요 원료다. 그러다 보니 맛과 향이 다양한데도, 이 주정은 향과 맛을 빼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주정 맛이 같아야 정형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결과물인 빠르고, 싸고, 효율적으로 생산된 ‘무맛 소주’가 지금 대세인 시대가 된 것이다.
소주에 부과되는 세금 체계도 문제가 많다. 현재 소주 주세 체계는 가격에 연동되는 종가세. 가격에 세율을 곱한 것으로, 현재 주세만 원가의 72%를 내고 있다. 즉 현행법에 따르면 술값이 낮을수록 세금을 적게 낸다. 반면 좋은 원료로 술을 빚으면 원재료 값이 상승하고, 세금까지 더욱 늘어 결국 술이 비싸져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다. 이러다 보니 저가의 소주만 시장에 유통되고, 그 결과 이러한 소주가 시장 99%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소주 상황이다. 더불어 쌀, 보리 등 순수 곡물로 소주를 못 만드는 법인 ‘양곡관리법’이 1965년에 제정되면서 이러한 맛없는(무미) 소주의 유통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1%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재료의 맛이 있고, 양조장에서 발효 및 증류를 거친 ‘증류식 소주’라고 불리는 제품이다. 소규모 양조장 제품으로는 안동소주, 문배주, 이강주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중견기업 포함) 제품으로는 일품진로, 화요 등이 있다. 이러한 소주에는 지역의 농산물, 만든 사람의 철학, 그리고 우리 전통문화와 음식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다. 이러한 소주를 마시면 다양한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다. 강압적이지 않고, 무조건 한 번에 다 마셔야 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세금 체계. 세금 체계를 가격에서 용량으로 바꿔야 한다. 일부에서는 소주에 종량세를 부과하면 가격이 올라간다고 지적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지금의 소주(녹색병 소주)는 현행 제도(종가세)를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안동소주 등 증류식 소주에만 종량세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고급 소주의 가격은 내려가고, 소비자가 그들을 찾으면서 다양한 고급 소주도 나올 수 있게 된다. 한국 소주 시장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 학과 겸임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