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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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송송 계란탁!… 숙취 해소에 좋은 ‘해장국의 지존’ [김새봄의 먹킷리스트]

아스파라긴산 다량 함유 해독 작용 탁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주 콩나물국밥을
‘세계 9대 숙취음식’으로 선정
전주 콩나물국밥 ‘물’ 좋기로 유명
밥·재료 넣어 국물로 온도 조절하는 토렴식 개운
팔팔 끓인 직화식은 후끈하고 든든
신뱅이 콩나물국밥
지난달 세계적인 매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전주 콩나물국밥을 이탈리아의 ‘미드나잇 스파게티(밤늦게 먹는 파스타)’, 캐나다의 ‘블러디메리(토마토 주스를 넣은 보드카 칵테일)’ 등과 함께 세계 9대 숙취해소 음식으로 선정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 뉴스를 접하자마자 든 생각은 ‘한식의 세계화’가 아니다. 이런 소중한 음식의 존재를 여태 모르고 지낸 서양인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과음한 다음날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콩나물국밥을 한 수저 딱 삼켰을 때의 그 해방감이란. 목구멍에서 위로 국밥이 흐르기 시작하면 속이 아늑해지며 숙취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숙취해소의 정석 콩나물

콩나물에는 해독 작용에 탁월한 아스파라긴산이 다량 함유돼 숙취해소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단백질과 비타민C, 칼슘, 칼륨 등 무기질도 포함돼 영양이 가득한 데다가 콩나물국밥에 실과 바늘처럼 동반되는 달걀은 메스꺼움과 두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아미노산인 시스테인을 함유하고 있다. 이미 재료로서도 백점 만점인데 이들을 팔팔 끓여낸 뜨끈한 국물은 술로 경직된 위를 마사지해 숙취 지옥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게 해준다. 그야말로 숙취의 답안지다.

의외로 콩나물국밥의 탄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10년대 후반부터 문헌에 등장한다. 국밥의 재료는 도처에서 구할 수 있고 특별히 계절을 타는 재료도 없어 사시사철 맛볼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심지어 조리법도 간단하다. 멸치국물에 콩나물을 넣고 끓여 밥을 넣은 후 새우젓으로 간하고, 신김치와 대파, 데친 오징어 등을 얹으면 끝이다.

운암 콩나물국밥

이처럼 특별하지 않은 재료와 조리법 사이에서 유독 전주의 콩나물국밥이 유명한 이유는 뭘까. 이는 주재료인 콩나물과 쌀, 물이 좋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콩나물이 자라는 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이 좋다고 볼 수 있다. 1929년 발행된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 12월호를 보면 팔도 명물을 예찬하는 기사에서 전주의 탁백이국(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부르는 말. 탁백이는 탁주를 담는 그릇을 뜻한다)이 특별히 맛있는 것은 좋은 물 덕분이라고 같은 맥락에서 극찬하고 있다.

 

#수란에 국물과 김가루 뿌려 먹는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전주 콩나물국밥은 크게 ‘토렴식’과 ‘직화식’으로 나눌 수 있다. 뚝배기 속 국물온도를 어떻게 올리는지, 국물의 온도를 몇도까지 올리는지에 따라 다르다. 토렴식은 뚝배기에 밥과 기타 재료들을 채워 두고 끓는 육수를 국자로 퍼 담았다 덜어냈다를 반복해 국물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국물 온도는 대체로 70~80도에 맞춘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수고스럽지만 바로 먹기 적절한 온도에 맞춰질 뿐만 아니라 식감도 부드러워져 배려의 조리방식이라고 칭하고 싶다. 밥을 한번에 끓이지 않고, 순수 야채만 육수를 입고 나오기에 국물이 맑고 개운한데도 맛은 복합적이다. 특히 따로 낸 수란에 국물을 떠 넣고 김가루를 넣어 섞어 먹는 것이 아주 별미인데, 이렇게 제공하는 방식은 전주 남부시장식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남부시장 내에 있는 콩나물국밥집들은 시장으로 공수되는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바로 국밥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콩나물이며 마늘, 고추, 젓갈, 김에 이르기까지 시장에 모든 재료가 즐비하다. ‘운암콩나물국밥’은 먹어본 콩나물국밥 중에 가장 맛있었던 곳이다. 처음 이 집을 찾아가서 제일 놀란 것은 테이블당 즉석구이김 한 봉지를 통째로 준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콩나물국밥은 40차례 가까이 토렴해 굉장히 부드럽다. 콩나물을 쌓은 층마다 국물 맛이 달라 수저를 뜰 때마다 즐거움이 더해진다. 함께 먹은 사람들끼리 ‘맛의 백화점’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다올해장국’은 전주 토박이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남부시장식 전통을 따르는 맛이다. 본래 ‘명성옥’이라는 이름으로 긴 줄을 세우며 명성을 떨쳤는데 원래 주인인 할머님이 연로하셔서 가게를 닫았다가 조카가 다올해장국으로 가게를 다시 열었다고 한다. 대파가 두둑하게 올라간 국물은 부드럽고 시원하면서도 칼칼하다. 콩나물국밥의 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새우젓은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감칠맛을 올려주는데 국밥 한 수저에 새우 한 마리씩 올려 음미하면 입안에서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

직화식 콩나물국밥

#팔팔 끓여 후끈한 국물이 매력인 직화식 콩나물국밥

‘직화식’은 말 그대로 모든 재료를 뚝배기에 담아 섭씨 100도 가까운 온도로 끓여내는 전통적인 국밥 조리방식이다. 역시 국물은 입천장이 델 정도로 후끈하게 먹어야 제맛인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모든 재료를 넣어 끓이기 때문에 밥알과 달걀이 익으면서 나오는 탄수화물로 국물은 살짝 불투명하고 도톰해 든든하다는 장점이 있다.

새롭게 일군 밭을 뜻하는 ‘신뱅이’는 직화식 콩나물국밥 중에서도 인상적인 곳이다. 한옥마을 입구에 위치해 고즈넉한 정원이 딸린 가게는 고급 한정식집처럼 단정하고 우아한데 가격은 시장과 다르지 않다. 김치 명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특색 있는 김치의 장점을 한껏 살렸다. 가게의 상호처럼, 그간 존재했던 콩나물국밥의 전통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백김치 콩나물국밥’으로 새로운 세계를 일궜다. 잘 숙성시킨 백김치로 신맛을 극대화해 콩나물과 함께 국밥에 뽀얗게 끓여냈는데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과 김치의 카복실산이 조화된 해장의 끝판왕이다. 황태와 밴댕이 등 건어물과 채소를 사용한 깊은 맛의 기본 육수는 밥알에 녹아들어 국물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기가 막히고 시원하다. 함께 제공되는 김치 3종은 뽀얀 국밥에 맛과 색으로 다시 한 번 다채로운 색을 입혀준다.

김새봄 푸드칼럼니스트 spring586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