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음식에는 ‘마리아주’(궁합)가 있다. 레드 와인과 육류, 화이트 와인과 생선류 음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술과 요리의 궁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와인은 이때부터 유리병, 코르크 마개 등을 사용하면서 품질이 급격히 향상된다. 그러다 보니 와인에 따라 세밀하게 음식을 다르게 먹는 문화가 퍼진다.
그렇다면 왜 레드 와인에는 육류 요리, 화이트 와인에는 생선류 요리라고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화이트 와인에는 산미가 있는데, 이것이 마치 생선요리에 뿌리는 상큼한 레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육류 요리에는 잡내를 잡기 위해 향신료가 필요한데, 레드 와인이 가진 스파이시한 향과 맛이 이러한 향신료 역할을 대신한다. 하지만 예외는 얼마든지 있다. 진한 소스로 조리한 생선요리는 굳이 레몬이 필요 없다. 이러한 생선요리는 화이트 와인과 잘 안 맞는다. 육류 요리도 마찬가지다. 닭고기와 같은 흰 살코기 요리에는 오히려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 술과 요리의 궁합은 어떨까? 우선 한국인의 솔 음식인 치킨. 치킨 하면 생각나는 술은 바로 맥주다. 치킨과 맥주가 잘 어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맥주의 탄산감이 치킨의 기름진 맛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음료 속의 탄산은 자극이 강해 다른 맛을 잘 못 느끼게 한다. 예컨대 탄산이 다 날아간 콜라는 기존 콜라보다 더 달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로 맛이 달아진 것이 아닌, 탄산이 빠짐으로써 진짜 단맛이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생맥주의 탄산은 치킨의 기름진 맛을 못 느끼게 해 치킨을 더욱 맛있게 한다. 그래서 치킨과 맥주는 어울린다고 한다.
탄산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과 치킨도 잘 어울릴까? 맥주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잘 어울린다. 역시 탄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달콤함을 표방하는 스파클링 와인이라면 맥주만큼은 치킨과 어울리지는 않는다. 달콤한 음료는 기본적으로 음식과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 단맛이 음식의 맛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전이나 후가 어울린다.
치킨과 병맥주는 잘 어울릴까? 같은 맥주니 충분히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여기에 다른 점이 있다. 생맥주는 컵으로 바로 마실 수 있지만, 병맥주는 컵에 따른 뒤 마셔야 한다. 통상 치킨은 손으로 집어 먹는다. 그러다 보니 손에 기름이 묻고, 그 손으로 병맥주를 만지며 술을 따라줘야 한다. 비위생적이고 거추장스럽다. 즉, 생맥주와 치킨은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마실 수 있는 간편함이 있지만, 병맥주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치킨과 최고 궁합은 생맥주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스파클링 와인과 의외로 잘 어울리는 음식이 있다. 바로 파전이다. 파전 역시 기름기가 많은 음식. 이러한 기름기를 스파클링 와인의 탄산이 잡아주고, 젓가락을 사용해서 손에 기름이 묻을 일이 없다. 그래서 병을 들고 잔에 따라 마시거나 따라 주는 것이 편안하다.
결국, 술과 음식의 궁합은 맛과 맛의 조합도 있지만, 술잔과 식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참고로 치킨과 맥주의 궁합은 건강상 안 좋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다. 지나친 알코올과 지방의 섭취는 지방간 등의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치맥(치킨+맥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치맥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회학과 졸업.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 학과 겸임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