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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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청년 1인가구… 주거 불안정 계층 사다리 붕괴로 이어지나

2030 싱글 가구, 전체의 35% 달해
고령화 따른 독거노인보다 많아

소득 낮고 38% 월세거주
80%가 연소득 3000만원 채 안돼
월평균 소비지출도 142만원 그쳐
주거 형태도 취약… 자가 30% 뿐
미혼 증가, 결국 인구감소 이어져

#1.“친구들이 아이 낳고 키우며 사는 것을 보면 육아에 매몰돼 자기 삶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박지은(27·여·가명)씨는 2년 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독립했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자유롭게 산다. 자취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간단하게라도 직접 요리을 하곤 했지만 최근에는 번거로워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해결한다. 가끔 ‘집밥’이 생각나면 1인분짜리 식사세트(밀키트)를 새벽 배송으로 주문하면 돼 큰 불편은 없다.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여의치 않지만 필라테스 동호회 활동이야말로 박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결혼은 회사에서 능력을 충분히 인정을 받은 뒤 30대 중반쯤에 할까 생각 중이다. 박씨는 “나중에 결혼할 남자가 생기고, 그가 동의한다면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으로 살고 싶다”고 털어놨다.

 

#2.김민석(36·가명)씨는 직장을 갖고 1년 만에 원룸을 얻어 독립해 8년째 혼자 지낸다. 그 사이에 김씨의 월세 미니 원룸은 역세권 전세 오피스텔로 바뀌었고, 자동차도 생겼다. 김씨는 최근 와인 동호회에 가입해 와인 마니아의 길에 들어섰다. 그뿐 아니다. 퇴근 후나 주말에는 농구 레슨을 받고, 농구 동호회에서 게임을 한다. 농구화를 수집하는 것이야말로 김씨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김씨는 “현재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결혼을 서두를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신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는 “결혼을 하려면 아파트 전세라도 구해야 할 텐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결혼해서 아등바등 살 바에야 그냥 연애만 하면서 지금처럼 취미생활을 즐기며 혼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20∼30대 미혼 1인가구가 급증하면서 1인가구가 이제 우리나라의 ‘보편가구’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보편가구라고 여겼던 부부가 자녀 2명을 둔 4인가구는 이제 10가구 중 2가구에 불과하다. 1인가구가 10가구 중 4가구에 달한다. 3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서 1인가구는 906만3362가구로 전체 가구의 39.2%를 차지했다. 2016년 1인가구 비율은 35%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39.2%로 치솟았다. 반대로 전체 가구에서 4인가구 이상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5.1%에서 지난해 20.0%로 쪼그라들었다.

◆통계도 못 따라가는 1인가구 증가 속도

 

1인가구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통계청이 2019년 발표한 ’장래가구특별추계 2017∼2047년’에서는 2020년 1인가구가 616만6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30.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에는 711만4000가구(32.9%), 2047년엔 832만가구(37.3%)로 예상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는 같은 주소지에 살면서 세대분리를 한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하는데, 통계청 조사는 인구주택총조사 외에도 행정자료 등을 취합하여 동일 주소지에 살고 있는 경우 등은 1인가구에서 제외해 숫자에서 차이가 벌어지긴 하지만 1인 가구 급증 추세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20대와 30대의 비혼·만혼 현상이 심화하고, 고령화도 속도를 더하면서 현재 흐름대로라면 내년에 공표될 장래가구추계에서는 1인가구 비중이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2030’ 1인가구 최다, 10가구 중 8가구는 연소득 3000만원 미만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펴낸 ‘2020 통계로 보는 1인가구’를 보면 우리나라 1인가구 특성이 나타난다. 1인가구는 연령별로 20대 1인가구가 18.2%로 가장 많았다. 이어 30대 16.8%, 50대 16.3%, 60대 15.2% 등 순이었다. 고령화에 따른 1인가구보다는 미혼에 따른 1인 가구 비중이 더 높은 셈이다. 2015년 기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인가구의 혼인상태를 조사했더니 미혼이 43.8%로 나타났다. 사별이 29.5%, 이혼이 15.5%, 배우자 있음이 11.1%였다. 성별로는 여자가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남자보다 1인가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남자는 30∼50대에서 여자보다 1인가구 비중이 높았다.10가구 중 6가구(60.8%)는 취업 상태였는데 50∼64세, 30대, 40대 순으로 취업 비중이 높았다.

혼자서 버는 만큼 소득은 낮았다. 1인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2116만원(2018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36.3%에 불과했다. 10가구 중 약 8가구가 연소득 3000만원 미만이었다.

 

1인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42만6000원으로 전체 가구의 58.0% 수준이었다. 특히 주거·수도·광열 등 주거비 비중이 높았다.

 

1인가구 평균 자산은 1억6000만원으로 전체 가구의 37.2% 수준이었다. 금융부채 2000만원을 제하고 나면 순자산은 1억4000만원에 그쳤다. 주거 형태도 취약하다. 10가구 중 약 4가구에 달하는 38.0%가 보증금 있는 월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는 30.6%, 전세는 15.8% 등이었다. 소득이 낮고, 주거 형태도 취약한 20∼30대 1인가구가 결혼을 꿈꾸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혼 1인 가구 증가…인구 감소로 이어져

 

미혼에 따른 1인가구 증가는 출생아 수 감소로도 이어진다. 혼인이 줄면 출생아 수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행안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서 지난해 기준으로 사상 첫 인구 감소가 시작되고, 1인가구가 급격히 늘면서 가구 수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5815명으로 처음으로 30만명대가 무너졌다. 지난해 10월까지 누적 혼인 건수는 17만3197건으로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역대 최저치다. 혼인 건수가 줄어들면서 내년 출생아 수 감소도 불가피하다.

◆20대 73% 월세살이… 주거비 부담에 근로빈곤층 전락 우려

 

1인가구가 급증한 배경에는 고령화로 혼자 사는 노인 인구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청년 1인가구의 증가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결혼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던 다인가족 중심의 주거문화가 해체되고, 경제적으로 온전히 독립하기 전 단계인 청년 세대가 주거비용 부담으로 근로빈곤층이 돼 ‘내집 마련’ 기회가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느냐로 청년 1인가구의 주거환경이 차별화되는 불평등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0’에 실린 정현주 서울대 교수의 ‘청년 1인가구의 특징과 주거실태’ 보고서를 통해 청년 1인가구의 주거 현실을 들여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1인가구의 주거 상황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20대의 경우 남성 1인가구의 월소득 대비 임차료 비율은 21%, 여성 1인가구는 22%로 비슷하다. 그러나 30대에서는 여성이 21.3%로 남성(14.1%)보다 월등하게 높다.

 

이는 청년 여성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거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고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높은 주거비용을 지불하는 데 비해 청년 남성은 경제적 취약성으로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0대 1인가구의 주택 점유 형태는 ‘보증금+월세’가 66.5%로 가장 많았고, 월세도 6.5%였다. 이에 비해 자가(2.9%)나 전세(16.0%)는 20%에도 못 미쳤다. 30대 1인가구도 ‘보증금+월세’(49.8%)와 월세(7.6%) 비중이 절반을 넘었지만, 자가(10.7%)와 전세(124.0%) 비중은 크지 않았다. 이에 비해 60대 1인가구는 자가(47.3%)와 전세(12.0%)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70대 1인가구(63.4%)와 80세 이상 1인가구(67.4%)는 자가 비중이 60%대였다.

 

청년 1인가구의 주거면적도 작아지고 있다. 20대 1인가구의 주거면적은 2008년 34.8㎡였으나 10년 뒤인 2018년 28.6㎡로 6.2㎡ 줄었다. 같은 기간 30대 주거면적도 39.4㎡에서 36.3㎡로 3.1㎡ 감소했다. 정 교수는 “사회 진입 초기의 청년 1인가구의 주거 불안정은 지속적인 사회정착 장애요소로 작동해 결국 저출산과 계층이동 사다리의 붕괴라는 사회적 위기를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1인가구는 청년층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형 면적의 주택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올해 초 “2019년과 지난해에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의 가구 수가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지금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 등도 1인가구가 50%를 넘는 만큼 우리도 1인가구 증가에 맞는 주택을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세종=박영준 기자, 남정훈 기자, 세종=우상규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