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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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육아고충, 당신의 사정

#A: “하루종일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B: “내가 밖에서 놀고 온 게 아니잖아.”

김유나 사회부 기자

몇 달 전 남편과의 말다툼 상황이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 대부분 자연스럽게 A가 아내, B가 남편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B’였다. 지난해 초 나의 복직으로 남편이 ‘바통터치’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사회 통념과는 약간 다른 가정이 됐다. 나는 일을 하고,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보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일도 10년 가까이 해왔고, 15개월의 출산·육아휴직 기간도 거친 나였다. 출근해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아이를 봐야지. 복직 첫날,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슈퍼 워킹맘’이 되리라 다짐했다. 조금 설렜던 것 같다.

그 설렘은 일주일도 안 돼 쪼그라들었다. 휴직 기간 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일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다는 것을.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으로 들어가면 집에선 더 지친 모습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종일 아이와 씨름한 남편은 그야말로 ‘초주검’ 상태였다. 남편이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를 넘겨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남편의 퇴근만 기다렸다. 남편이 오면 아이를 맡기고,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충전’해야 다음날도 버틸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나는 종일 ‘우리의 아이’를 보느라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출근을 해보니 퇴근 후 아이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휴직하면 책도 실컷 읽고 영어공부도 하리라 다짐하던 그였다. 하지만 ‘라떼 파파’를 꿈꾸던 남편은 금세 퀭한 눈이 돼 “인생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그간 서로가 얼마나 희생하고 배려했는지를 알게 됐다. 그전에도 ‘고마워’란 말을 주고받았지만, 남편이 휴직했던 10개월간 건넨 ‘고마워’에는 그보다 진한 진심이 한 스푼 더 담겨 있었다. 둘 다 일하는 지금도 육아 문제로 종종 아웅다웅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 모두 애쓰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이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엄마들의 육아 스트레스가 높아졌다’는 기사를 썼다. 한 포털 사이트에 500여개의 댓글이 달렸길래 클릭했다가 깜짝 놀랐다. 대부분 ‘엄마만 힘드냐? 아빠도 힘들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힘들다’는 말은 ‘아빠는 안 힘들다’는 말이 아닌데도 대립구도로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다.

흔히 육아는 ‘행복한 지옥’이라고 한다. 아이는 더없는 기쁨이지만, 그만큼 큰 희생을 필요로 한다. 갑작스레 희생 역할을 맡은 부모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뾰족해진 마음이 서로를 찌르기도 한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다. 부부는 혼란을 헤쳐갈 ‘한 배’를 탄 사이란 것을.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내가 더 힘들다’고 불평만 하면 함께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건 힘을 모아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는 것이다. 한고비가 지나면, 환한 햇살 같은 아이의 웃음에 같이 웃는 시간도 올 테니 말이다. 오늘도 잠깐 투닥거렸던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 늘 고마워.

 

김유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