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아직 겨울이었다. 1일 미얀마의 새벽을 깨운 쿠데타는 미얀마 민주주의가 여전히 험로를 걷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압승을 거뒀고 평화롭게 문민정부 2기가 열리는 듯했다. 선거 기간 내내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과 결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집권당은 묵과했다. 결국 군부는 쿠데타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응수했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이지 못한 민주화의 그늘”이라고 이야기한다.
◆53년 만에 민주화… 군부와 ‘불안한 동거’
미얀마는 1962년부터 53년간 군부독재가 이어졌다. 군정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1988년 8월8일 이른바 ‘8888 항쟁’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아웅산 수치 여사가 군부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군부는 수치를 1989년 가택연금했고, 그런 상태에서도 이듬해 열린 총선에서 수치가 결성한 NLD는 82%의 지지로 압승한다. 당황한 군부는 선거를 없던 일로 했고, 그의 가택연금도 무기 연장된다. 이후 몇 차례 풀려났다 갇혔다를 반복하는 동안 군부독재는 계속됐다.
공고했던 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07년 갑작스런 유가 인상으로 민주화 시위가 촉발되면서부터다. 유혈사태로 이어진 격렬한 시위 끝에 군부는 민주화 일정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2015년 치러진 총선에서 NLD가 여당으로 올라서며 군부독재는 막을 내리고, 수치는 이듬해 국가고문으로 미얀마를 이끌게 된다.
그러나 미얀마 헌법은 총 664석의 상·하원 의석 중 25%를 무조건 군부에 부여하고 있다. 또 주요 장관직을 군부가 가져가는 데다 국가 위기 시 정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완전한 권력이양이라기보다는 ‘불안한 동거’에 가까웠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큼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수치의 명성도 2017년 벌어진 ‘로힝야족 인종청소’ 사태로 퇴색한다.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수십만명이 미얀마군의 탄압에 방글라데시로 강제 이주했는데 방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도 편향적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관위 자체가 친여당 인사로 구성됐고, 코로나19를 빌미로 여당에서 금권을 살포하다시피했는데 사실상 이를 묵인했다”고 전했다.
◆민주화 시계 뒤로 갈까
민주주의가 무르익기도 전에 수치와 주요 지도부를 몰아낸 군부는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내년 총선을 다시 치러 승리한 당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NLD는 “군부 행동은 미얀마를 다시 독재 밑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을 국민에게 촉구해 미얀마의 앞날은 풍전등화와 같다.
과거 군부는 정권을 탈취한 뒤 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세우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장기독재를 합리화하곤 했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을 쓴다면 미얀마의 민주주의 시계는 59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장 연구원은 “미얀마 군부는 친정부 세력으로, 중국의 뒷배가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민주화 시위(샤프란 혁명) 당시 중국이 군부로 하여금 개혁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어 군부가 전면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며 “더구나 군부 내에도 미얀마가 중국의 경제적 속국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군부가 직접 세력을 잡지 않고 계획대로 총선을 치르면 NLD가 다시 정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수치와 NLD의 국민 지지도는 여전히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친정부 성향의 야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미얀마 역사학자인 탄트 민 우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날 사건으로 매우 불확실한 미래로의 문이 열렸다”며 “최근 벌어진 그 어떤 유혈 사태보다 더 심각한 사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