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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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빅브라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원래 제목은 ‘유럽 최후의 인간(The Last Man in Europe)’이다. 독재 권력의 폭력에 인간성이 갈가리 찢긴 암울한 사회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의 나라 오세아니아. 핵심 당원인 오브라이언은 말한다. “빅브라더에 대한 사랑 이외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전능해지면 과학도 필요 없어.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도, 호기심이나 삶의 향유도 사라질 거야.” 그런 사회는 어떤 곳일까. 번득이는 감시·통제·폭력·억압만이 존재한다. 안방 숨소리까지 샅샅이 감시하고, 역사와 뉴스를 날조한다. 연애인들 자유로울까.

주인공 윈스턴은 풀죽어 말했다. “공포와 증오, 잔인성 위에 문명을 세울 수는 없어요. 그런 문명은 유지되지도 못해요.”

‘1984’는 또 하나의 묵시록이다. 윈스턴의 생각을 경전처럼 받드는 서구인들. ‘개인의 자유’를 천부의 권리로 여긴다. 서구 자유민주주의는 그 위에 서 있다. 코로나19 공포에도 우리나라처럼 함부로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고, 신용카드 정보를 뒤지는 행위는 상상할 수 없다. 왜? 그것은 ‘오세아니아의 감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어찌 대응할까. 백신을 개발한다. 과학은 자유를 지키는 시녀다.

우리는 어떨까. 사생활을 발가벗긴다. K방역? 그들은 어찌 생각할까. “그런 나라에 사느니 코로나 천국인 유럽에 살겠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두고 ‘빅브라더 논쟁’이 불붙었다. 법안은 금융위원회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업체를 통한 거래 내역을 금융결제원을 통해 관리·수집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한국은행이 성토했다. “그것은 빅브라더를 만드는 행위”라고. 금융위원장, “전화통화 기록이 통신사에 남는다고 통신사를 빅브라더라고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 왈, “여러 통신사 정보도 한곳에 모아두고 그걸 들여다볼 수 있다면 빅브라더다.”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다. “엄격히 관리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 말을 누가 믿나.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오히려 수사기관을 없애겠다는 판에. 묻게 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나.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