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유례 없는 범정부 차원의 신도시 입지 전체 대상 토지거래현황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의혹 제기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의혹이 신규 택지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심각한 민심 이반과 부동산정책 추진동력 상실이 우려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가 임기 내내 강조한 ‘공공성’우선 개발 정책도 치명상을 입어 3기 신도시 조성과 2·4 주택공급대책 후속 사업 등의 난항이 우려된다.
3일 국토교통부는 국무총리실과 합동으로 광명·시흥을 포함해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토지거래현황 등을 전수조사한다고 밝혔다. 국토부와 LH, 관계 공공기관의 관련부서 직원 및 가족이 대상이다. 국토부는 다음주까지 기초조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조사 대상인 남양주 왕숙과 고양 창릉 등 6개 신도시 규모를 모두 합치면 4545만㎡에 달한다. 여의도 면적 29만㎡의 156배 규모다. 참여연대는 전날 광명·시흥지구에서 무작위로 뽑은 10개 필지에서 14명(국토부 조사결과 13명)의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전체 신도시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얼마나 더 많은 유관 공직자나 가족 명의의 토지 소유분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앙정부나 소속 공기업·기관뿐만 아니라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 지방자치단체나 그 산하 공기업 소속 직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 신도시의 경우 입지가 확정되기 훨씬 전부터 후보지로 거론되며 시청 공무원들이 땅을 사들인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한 시기가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한 기간과 상당 부분 겹쳐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이유로 이날 변 장관은 한 시민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이와 관련한 경찰 조사가 진행될지도 관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이 ‘변창흠표 공급대책’이라고 힘을 실었던 2·4대책이 제대로 된 추진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투평해졌다. 2·4대책은 LH 등 공공기관을 통한 도시정비사업 등을 통한 공공성을 강조한 대책이라 이번 투기 의혹이 시장에서의 신뢰 상실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지 주민의 반발로 보상 등이 지체될 경우 조속한 주택공급을 통해 집값 안정의 시그널을 확보하려던 정부 대책이 발목 잡힐 수 있다.
정부는 신뢰 제고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우선 신규 택지개발과 관련된 국토부, 공사, 지방공기업 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국토부는 의심사례에 대한 상시 조사 및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위법·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 계획은 관련 법령 정비 등의 시간이 필요해 당장 시행이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전 투기가 사실이라면 일반인이 풍문으로 들어 땅을 산 것이 아니고 부지개발 담당기관 직원이 신도시 후보지에 ‘빨대’를 꼽았으니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며 “당사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이런 사태가 발생한 뿌리를 찾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문재인정부의 공공성 우선 주택 정책은 허울뿐이었음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