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속에서만 존재하던 한국형전투기(KF-X)의 완전체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체계개발 과정에서 진행될 비행시험, 지상시험을 위해 시제기 6대가 제작 중이다.
1호기는 도색 작업을 거쳐 다음달 말 출고식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후 내년 7월쯤 첫 비행시험을 실시, 2026년 상반기 체계개발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전투기 개발 능력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KF-X 출고식은 회의적 시각을 잠재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출고식을 치른다고 해서 KF-X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하드웨어를 만들었을 뿐이다.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고 나서 비행시험을 거치며 수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무장 통합 문제와 더불어 시제기 출고 이후 본격화할 수출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빈약한 무장, 수출 추진에도 영향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KF-X에 탑재되는 항공무장은 현재까지 12종이다.
이 가운데 미사일은 영국산 미티어와 독일산 AIM-2000 공대공미사일, 국방과학연구소(ADD)와 LIG넥스원이 탐색개발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다.
나머지 9종은 미국산 GBU 계열과 MK-82/84, 국산 KGGB 폭탄이다. 전체 무장의 75%가 폭탄인 셈이다.
GBU-39처럼 사거리가 100㎞가 넘는 것도 있지만, 이 폭탄들은 대부분 공군이 기존에 운용중인 것들이다. 레이더 파괴 미사일이나 공대함 하푼 미사일,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등은 장착하지 못한 상태다.
KF-X보다 20여년 전에 국내 생산된 KF-16보다도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시제1호기 출고 후 지상 및 비행시험을 거치면서 항공무장이 추가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레이더를 포함한 전자장비와의 통합에서 발생할 리스크, 지상 및 비행시험 일정, 첫 실전배치될 KF-X 블록1의 성능 등을 감안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능한 많은 종류의 첨단 항공무장과 관련 자료를 유럽 등 제3국에서라도 확보해 시제기 제작 돌입 시점에서 체계통합을 함께 하는게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도 개발 중인 항공무장과 기체를 체계통합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예측을 어렵게 한다. 블록1에 검증된 미사일을 장착하고 블록2에 국산을 쓰자는 주장이 많았으나, 현재까지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공군의 전투력 문제와 더불어 KF-X 수출과 인도네시아의 공동개발 프로그램 이탈 여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전투기를 구매할 때, F-22 수준의 강력한 스텔스 성능이 없다면 탑재 무장 수준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공군이 2002년 차기전투기(F-X) 1차 사업 당시 파격적인 기술이전을 약속한 프랑스 닷소 라팔 대신 구형 논란을 빚은 미국 보잉 F-15K를 선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 라팔은 공대지 능력이 제한적이었지만, F-15K는 다양한 무장을 조합해 전천후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닷소는 무장능력 강화 계획과 기술이전 등을 강조하며 우리측을 설득했으나, 검증된 F-15K의 강력한 무장 탑재량을 이기지는 못했다.
이같은 상황은 인도네시아에서 재연되고 있다.
성능개량을 거듭한 라팔은 장거리 전략 타격능력을 지닌 전투기가 됐지만, 라팔보다 20여년 늦게 개발된 KF-X의 공격력은 라팔보다 떨어진다. KF-X에 소극적인 인도네시아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비롯한 국산 항공무장 개발이 추진중이지만, 2030년대 이후에야 실전배치될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KF-X 무장 능력이 완비됐을 때, F-35A 스텔스 전투기의 가격은 크게 하락하고, 라팔과 F-16V 등이 남은 틈새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방위사업청과 KF-X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300~500대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나, 전천후 공격능력을 조기에 갖추지 않는 한 기존 전망대로 수출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언제, 어떻게 생산해야 하나
KF-X와 관련해 방위사업청이 최근 공개한 자료들을 보면, 양산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시제기 6대를 제작, 전자장비와 무장을 통합하는 체계개발 단계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는 평가다.
KF-X의 전체적인 도입 규모는 120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양산 계약 체결 전까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본격적인 양산 논의는 다음달 시제1호기 출고식 이후 지상 및 비행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이뤄질 전망이다.
시험평가가 끝나면 방위사업청 주관하에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KF-X 양산계획안을 심의, 의결한 후 한국항공우주산업과 초도 양산 계약을 하게 된다. 이후 후속 양산 계약이 이뤄진다.
현재 KF-X 초도 또는 2차 양산은 기본 비행성능과 공대공 전투능력을 지닌 블록1, 공대지 능력을 갖춘 블록2를 합쳐 60대 안팎의 규모가 거론되고 있다. 나머지 수량은 양산 계약 논의 시점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생산라인 유지와 KF-X의 첫 양산이라는 점 등을 감안, 블록1을 블록2보다 더 많이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1은 기본 비행성능을 확보하는 초기 버전이다. 공군이나 방위사업청 등에서도 양산 규모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관건은 블록2다. 공군의 블록3 소요제기가 없다면 최대 80대의 블록2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제작할 것인가가 문제다.
군과 방산업계에서는 △블록2를 20여대 씩 3~4차례에 걸쳐 양산 계약 체결 및 생산하는 방안과 △블록2 초기 주문량을 최대한 확대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협상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수측은 장기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선수생활을 보내면서 ‘목돈’을 받고 싶어한다. 구단측은 부상이나 기량 저하 리스크 감소를 위해 단기간의 계약을 하거나 옵션을 늘리기를 원한다.
KF-X 블록2 양산도 이와 유사하다. 공군이 구단, 방산업계가 선수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20여대 씩 여러 차례에 걸쳐 계약하고 생산하면, 공군은 양산 도중 발견될 수 있는 결함을 별도의 성능개량 조치 없이 생산라인에서 수정할 수 있다.
2030년대 등장할 레이저 등 신무기를 KF-X에 탑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6세대 전투기를 2030년대에 배치할 예정인 상황에서 KF-X의 성능을 공군의 작전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빠르게 높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블록2 초기 주문량을 최대한 늘린다면, 그 규모는 2~3개 비행대대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해진다.
방산업계로서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가능하다.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비용 절감도 노릴 수 있다.
결국은 공군의 작전 운용을 우선할지, 항공우주산업 진흥을 먼저 생각할 것인지가 관건인 셈이다.
이를 두고 △2030년대에는 F-35A가 지금보다 더 확산한 상태에서 6세대 전투기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고, △다양한 종류의 전투기를 단기간 내 소량 생산해 전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안이 선진국에서 검토되는 최신 개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F-X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전투기다. 국가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기체다. 하지만 KF-X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하려면 갈 길이 멀다.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기 전에 KF-X가 2030년대 한반도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게 먼저다.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없다면, KF-X는 빈 비행기로 전락할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