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신공항이 들어서면 지역주민들은 모두 다 쫓겨나야 하는데 (이곳에) 새로 집을 짓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집을 짓겠습니까? 다 보상금을 노리고 수요도 없는 집을 짓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난 5일 찾은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마을에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얼마 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여권 지도부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던 ‘대항 전망대’를 비롯한 마을 주요 지점마다 설치됐다. 일부 주민은 “선거 때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얘기가 ‘단골’처럼 나오고, 정치인들이 가덕도를 찾을 때마다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이젠 안 속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섬 곳곳에 신축 건물 공사장이 10여 곳에 이르는 것도 최근 달라진 가덕도 풍경이다. 여기저기 건설자재가 쌓여 있고, 굴착기와 트럭 등의 건설장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항마을에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붐을 타고 제2의 개발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부산신항과 거가대교 건설 당시 한 차례 개발 광풍이 거세게 휩쓸고 간 뒤, 신공항 건설에 따른 보상금을 노린 건물 신축이 붐을 이루고 있다. 대형 카페와 현대식 펜션, 노래방이 줄지어 들어섰고, 심지어 치킨집까지 성업 중이다. 외지인도 늘었다. 지난달 말 기준 부산 강서구 전체 인구는 3900여명 감소했으나 유일하게 가덕도만 37명 증가했다.
땅값도 치솟고 있다. 가덕도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김성룡 소장은 “현재 집을 지을 수 있는 토지는 평당 250만∼300만원에 이른다”며 “김해신공항검증위 발표 이전까지 거래가 활발했으나,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거래가 아예 없다”고 전했다. 새로 건물을 짓는 사람들은 정부의 부동산조정구역 지정 이전에 토지를 사들인 외지인들이라는 설명이다.
대항마을에서 태어나 70년 가까이 고기를 잡았다는 마을주민 한상태(80)씨는 “원래부터 여기서 고기 잡으며 살던 원주민들은 모두가 신공항 건설을 반대한다”며 “외지에서 (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은 신공항 건설을 찬성해 주민들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주민 대부분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한 파도와 바람, 짙은 안개 등 악천후 때문이다. 실제로 1959년과 2003년 태풍 ‘사라’와 ‘매미’ 내습 당시 바닷물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는 바람에 재산피해가 컸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0여년 전 대항마을로 이주해 관광객·낚시꾼을 상대로 한 펜션과 커피숍을 운영하는 양만식(67)씨는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이 여러 가지 문제로 무산되고 가덕도가 영남권 신공항 부지로 최종 선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산·울산·경남지역 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인천공항까지 트럭으로 운송할 경우 비싼 운송비와 트럭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인한 환경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민의 오랜 숙원사업을 ‘일사천리’로 추진 중인 여권에 대한 환영 목소리도 감지된다. 한 주민은 “정부가 하는 국책사업을 힘없는 주민이 무슨 수로 반대할 수 있겠느냐”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부산시민의 오랜 숙원사업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현행법상 가덕도는 대규모 개발이 불가능한 곳이다. 생물 다양성과 보호대상, 해양생물 서식지 등 해양생태 1등급 지역만 6곳이다. 또 자연녹지 8등급 이상 지역도 3곳에 달한다. 신공항이 들어서면 천혜의 자연환경은 한순간에 파괴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한데도 보수정권 시절 대규모 개발 사업마다 반대하며 발목을 잡았던 시민단체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이번만은 잠잠하다.
대항마을 원주민 30~40명은 ‘가덕도 신공항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허섭(67) 대항마을 통장은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면 정식으로 비대위를 출범시킨 뒤, 도와줄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오성택 기자 fivest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