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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회적 책임 외면 땐 도태… ‘착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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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가 된 ESG 경영
‘먹고사는 문제’에 치중해 미뤄왔지만
코로나·기후변화 등 확산… 관심 커져
국내기업도 “ESG는 선택 아닌 필수”
전담조직 신설·확대 등 대응에 분주
금융업계선 관련 신상품 출시 봇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통해 성과 홍보
기준 삼을 ‘지수’ 없어 내부선 피로감
“재무제표 넘어 미래 가치 중시해야”

민간은 물론 공공에 이르기까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다. 이전에도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가능경영, 그린뉴딜 등을 거치며 꾸준히 논의가 확대된 데 이어 올해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간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며 미뤄온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우리나라 또한 선진국들에 비해 준비가 미흡한 상황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분주한 대응이 한창이다.

◆대세가 된 ESG, 국내 수준은 아직 ‘미약’

8일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전 세계 지속가능펀드 규모는 약 4조1530억달러(약 4696조원)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3조1960억달러로 77%를 차지했고, 미국이 3920억달러(9.4%)로 뒤를 이었다. 유럽과 미국만으로 비중이 86.4%인 셈이다.

이외 지역에서는 호주·뉴질랜드가 1380억달러(3.3%), 일본 1260억달러(3.0%), 캐나다 930억달러(2.2%),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전역이 2080억달러(5.0%) 등의 분포를 보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와 대만 등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모닝스타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도 새 금융상품 출시에 이어 관련 세미나가 열리는 등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확산하고 있다”며 “용도 및 브랜드가 바뀐 ESG 펀드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명칭 변경에 대한 승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SG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교적 오랜 기간 논의됐다. 이미 해수면 상승 등 각종 환경 문제들과 관련한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해 그린뉴딜 등 다양한 의제로 다뤄졌다. 이를 통해 유럽연합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논의가 확산하는 듯했으나 미국과 중국의 불참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졌다. 2019년 12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이끄는 유럽연합 새 집행위원회가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을 선포하며 출범해 논의의 고삐를 다시 움켜쥐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산불, 홍수, 쓰나미 등 대규모 재난과 관련한 전 세계적 불안이 확산하며 관심을 환기시켰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대 행보가 계속되며 또다시 답보상태에 빠지는 듯했으나, 바이든 행정부가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등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녹색금융 등 ESG와 관련한 정부와 기업의 분위기가 올해 들어 사뭇 다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금융회사 대표들이 공식 석상에서 “ESG는 선택이 아닌 필수”, “ESG 경영 실천만이 살길” 등의 구호를 외치는 한편 전담조직이 없던 기업은 신설하고, 이미 마련한 기업은 확대·격상하는 등 대응에 분주한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관련 신상품 출시가 줄을 잇는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 급급한 기업들

그러나 ESG가 열풍처럼 확산하는 것과 달리 면면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세계자연기금(WWF)이 지난해 말 아시아 지역 48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은행 부문 지속가능 금융 평가(SUSBA)에서 국내 주요 은행들은 동남아시아 지역 은행 평균 수준의 성적을 받아들었다. 국내 은행들은 성과를 측정하는 6개 부문 중 목적(65%)과 금융상품(40%) 등에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정책(13%)과 절차(11%), 임직원(18%), 포트폴리오(28%) 등 나머지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진이 대내외에서 ‘ESG 전도사’ 활동에 분주한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A기업 관계자는 “외부 행사에서 대표마다 ESG에 관해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며 “ESG와 관련해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자료의 대부분이 사회적책임이나 봉사활동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서별로는 기획이나 홍보, 마케팅 관련 부서의 불만이 특히 팽배한 모습이다. 사업부서에서 ESG 관련 성과가 나오는 곳이 거의 없는데, 기존 사업이나 연관이 있을 듯한 사업을 총동원해 계속 성과를 어필해야 하는 상황 탓이다. B기업 관계자는 “2~3년 전 홍보와 마케팅의 초점이 인공지능에 맞춰진 것처럼 최근에는 뭐만 있다 하면 무조건 ESG를 붙이고 보는데, 이래도 되는 건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여기에는 아직 ESG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데다 부족한 근거 데이터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 확대를 추진 중이다. 아울러 기업과 투자자들이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ESG 요소가 고려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는 한편 관련 정보를 공유할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업별로 기준으로 삼을 만한 지수(index)나 표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면 대체로 GRI(글로벌 지속가능보고서 이니셔티브)와 SASB(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 UNGC(유엔글로벌콤팩트),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 등 다양한 국제 기준을 토대로 했다. 기업별로 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다. 기업별로 ESG와 관련해 공개하는 정보·데이터가 미미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증이나 제3자 검증 또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이 ESG 관련 성과로 내세우는 내용도 제각각이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변한 내용을 제시하는 기업도 있지만, 국내외 인증 개수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기업이나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을 강조하는 기업 등 기준이 통일되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나 무디스 등 기존 신용평가사들의 ESG 지수도 주요 기준으로 떠올랐다.

이에 편승해 국내 인증도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이들의 근거들을 살펴보면 독자적으로 기준을 마련하기보다는 국제기구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기준을 인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거에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지수를 제대로 만족하는지를 살펴보겠다’고 명시한 곳도 있다. ESG에 대해 제대로 대비가 되지 않은 기업이더라도 인증을 여러 개 받아 성과를 호도할 수 있고, 기존에 잘 준비해온 기업 입장에서도 인증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경우도 발생하는 셈이다. C기업 관계자는 “이미 수년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왔다”면서도 “새로 생겨나는 인증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타사보다 순위가 낮게 나오기 때문에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과거 재무제표 넘어 미래 가치 보는 장기투자의 시대

이렇듯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ESG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의구심을 제기할 수 없다. 관성대로 환경오염 문제를 무시하거나 사회적책임을 외면하는 방식으로는 기업 운영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녹색 양적완화(QE)를 일찌감치 공론화했고, 국내에서도 금융권에서 석탄과 관련한 분야에 대한 금융지원을 줄이거나 끊는 추세다. 기존처럼 기업을 운영했다가는 당장 대출 길이 막힌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환경오염을 일삼는 기업을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기존 체제와 달리, ESG 금융·경영이 본격화한 시대에는 이러한 기업들을 규제·제재하는 것은 물론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대해석해 ‘이미 새 기술이나 체제에 준비를 마친 선진국들이 중국이나 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훈 UN SDGs협회 사무대표는 “ESG가 초기에는 규제의 의미를 갖기도 했지만, 지금은 권고를 통한 확산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제재를 중요시했다면 ESG 채권 같은 경우에도 원칙을 매우 까다롭게 했을 텐데 그보다는 포괄적으로 제시해 신용 등급이 나쁜 정도의 기업이 아니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ESG와 관련한 가치 측정이 명확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재무제표를 대체 혹은 보완할 새로운 기준 확립이 시급하다. 재무제표가 분기나 연 단위 등 과거의 지표에 대해 기업을 살펴보는 기준이었다면, ESG는 기후변화 등으로 바뀌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살피고 새로운 유형의 금융리스크에 대비하는 측면이 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해 물리적으로 자산의 가치가 변하고, 소비자의 선호도도 변하기 때문에 미래를 보고 하는 투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장기적인 리스크에 대해 금융기관별 차원뿐 아니라 금융당국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