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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년 맞은 곽재구 시인 9번째 시집 ‘꽃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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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역의 아스라한 풍경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그리움을 담아낸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가 아홉 번째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창비)를 펴냈다. 2019년 시집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출간 이후 2년 만으로, 등단 40년을 맞아 펴낸 시집이다.

시집에서 시인의 서정은 깊어진 연륜만큼 넓어지고 따뜻해졌다. 아름답고 투명한 언어로 물 흐르듯 서정의 세계를 관조한다. 자연만이 아닌, 자연과 사람들이 잘 어울린 세계를. 빨리 데려가 달라는 87세 할머니의 사연이 비와 빚어내는 이 풍경을 보라.

“비 오시네// 염병 처먹을 넘/ 제명대로 못 살고/ 푹 꼬구라질 넘// 어머니 누굴 기다리시나/ 밤새 들리는 저 욕 소리/ 마른 들에 스며든 저 빗소리// 오살 넘/ 워디서 지랄허구 자빠졌는가/ 날 여태 데릴러 오지 않고// 비 오시네/ 천지사방/ 어머니의 따뜻한 욕 오시네// 여든일곱 어머니/ 대청마루에 서서/ 스무살 적 손 내미네// 마른 손바닥 위/ 빗방울 하나 툭 떨어지네/ 스무살 비 아버지/ 어머니 손에 입맞춤하네”(‘비 아버지’ 전문)

용오름마을, 소뎅이마을, 파람바구마을, 선학, 섬달천…. 시집에는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지명이 많이 등장한다. 아홉 고을의 물길이 흘러든다는 탐진강 하구의 강진 구강포도 그렇다. 포구에 나갔다가 비를 만나지만, 우산 없어도 즐기는 시인.

“비는 갈참나무 우산을 쓰고/ 갈밭 걸어가다 나를 만나네/ 나는 우산이 없으니 비를 보고 그냥 웃네/ 비는 천지사방에 뽀뽀를 하고 굽은 내 등허리에도 뽀뽀를 하네/ 비는 대놓고 뽀뽀하면서 부끄러움이 없다네/ 대낮에 비를 만나면 간지럽고 부끄럽다네”(‘구강포’ 전문)

시인은 이번 시집에 71편의 시를 4부로 나눠 실었고, 해설 대신 이례적으로 자신의 산문을 곁들였다. 그런데 이 산문 또한 간단치 않다. 문학적 자전이자 40년 시력 끝에 얻어낸 시론처럼 읽혀서다.

“순천의 동천 강을 산책하고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시인은 “1980년대 후반 우리에게 ‘시의 시대’라 불린 시절이 있었다.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그 시절의 시처럼 오늘 우리의 시도 같은 꿈을 꾸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