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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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취소만이 LH투기꾼 실질적 처벌” vs “초가삼간 태울 수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신도시 지정 취소’ 요구 잇따라
“거액 대출받아 투기한 LH 직원엔 지정 취소가 엄벌” 주장
전문가 “‘조직적 투기’ 확인 시엔 지정 취소도 고민해야
공급 계획 차질 따른 집값 상승 영향 등도 고려 필요”
문 대통령 “2·4 대책 추진 차질 없어야”
9일 경기도 LH 과천의왕사업본부 모습. 연합뉴스

LH 직원들의 ‘광명·시흥신도시 땅 사전투기 의혹’이 확산하면서 “신도시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부정보로 투기에 나서 보상이득 등을 챙기려 한 직원들을 실질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신도시 지정 취소 뿐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요구는 LH 직원들의 혐의가 확인돼 처벌받더라도 현실적으로 그들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회수하기 어렵다는 법적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시 지정 취소로 수도권 주택 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이 이번 의혹을 제기한 지난 2일 이후 게시된 ‘3기 신도시 지정 철회’ 요구 청원만 4건에 달한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4만6000여명의 동의를 얻은 ‘제3기 신도시 철회 바랍니다’ 청원에는 “LH 주도의 제3기 신도시 지정 철회해 달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하겠느냐”는 내용이 담겼다.

 

신도시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이들은 투기 의혹 직원들이 형사처벌·징계처분을 받더라도 그들이 가져갈 경제적 이익은 막기 어렵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1900여명이 동의한 ‘3기 신도시 철회로 투기꾼들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에서 청원자는 “파면이나 징계, 환수는 어찌 될지 모른다”면서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면 막대한 대출을 받아서 투기한 그들에게는 그 자체가 엄벌”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민변 등은 LH 직원들이 토지 구입에 100억원가량을 사용했으며,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금만 5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해당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에 따라 얻은 부당이득의 몰수·추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몰수·추징을 위해선 우선 이들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고, ‘업무상 비밀’을 이용했는지도 명확히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 직원들의 부당이득에 대한 몰수·추징이 가능한 죄목은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의 죄’뿐으로, 이들이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의 이익 등을 취득했다는 점이 확인돼야만 한다. 특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차명·법인 명의로 구입한 직원의 경우에는 수사기관 등이 땅 구입 여부를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신도시 땅 사전투기 의혹’과 관련해 “3기 신도시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이같은 시민들의 요구에 여권에서도 향후 신도시 지정 취소를 검토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정부 여당 차원에서 (지정 취소를) 검토한 것은 없지만, 심각하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면서 “조사 결과를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홍 의장은 “1·2차 조사에서 (LH 직원 등의) 비리가 광범위하다고 나오면 그런 가능성도 검토해야겠지만, 이번 조사로 어느 정도 걸러냈다고 판단되면 신도시 개발 문제를 늦출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정부·수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LH 직원들의 조직적 투기 등이 드러날 경우 지정 취소를 검토할 순 있지만,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정 취소 여부는) 어느 쪽이 더 공공성·사회성이 있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면서 “더 이상 투기의심 직원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처리하면 될 것 같지만, 계속 나오면 지정 취소를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권 교수는 정부가 지정 취소보단 예정대로 계획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9일 오후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LH임직원 신도시 투기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신도시 지정 취소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취소하면 그 동네 땅값이 더 오를 수 있다”면서 “(정부의) 신도시 개발이 취소되면 개발 압력이 세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민간이 개발할 수 있도록 바뀔 가능성 높다”고 예측했다. 그는 “지정 취소가 되면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지정 취소 시) 그 동네 문제만이 아니라, 수도권 집값이 오르는 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단 2·4 부동산 대책에 포함된 신도시들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회의에서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2·4 부동산 대책 추진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 공급 대책이 오히려 더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