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다,고.”(7쪽)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의 신작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책의 모두에서 작가와 아버지가 나눈 이야기로 독자를 맞는다. ‘한 일이 많다’(화자)와 ‘살아냈을 뿐’(아버지)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할 아버지의 인생을 딸이 찾아갈 것임을 예고한다. 작가 스스로 ‘가장 소개하고 싶은 대목’으로 꼽았다.
“이 문장이 작품 전반에 강물처럼 흐르기를 바라면서 썼습니다. 그토록 많은 일을 해내고도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게 우리 주변에 이름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했고 그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소설의 맨 마지막에 이르러 조용히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는 아버지가 작가인 딸에게 내 말을 좀 받아 적어두라고 하는 데까지 나아가죠. 아버지가 일생을 함께한 자식들과 어머니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낸 이 아버지의 생 앞에 바짝 다가와 있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파란 잎으로 흔적을 남기는 장면으로 쓰고자 했어요.”
신경숙의 신작은 엄마가 병 치료를 위해 떠나면서 오래된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버지를 돌보러 가는 딸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재발견하는 소설이다. 그의 여덟 번째 장편이고, 신작 장편 출간은 11년 만이다.
신 작가는 앞서 지난 3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6년 전 벌어졌던 표절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젊은 날에 저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제 자신도 발등에 찍힌 쇠스랑을 내려다보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다시 한 번 제 부주의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는 2015년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유사하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돼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갔다가 2019년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당시 지면을 통해 “젊은 날 한순간의 방심으로 제 글쓰기에 중대한 실수가 발생했”다고 사과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신 작가는 이날 스스로 사과를 한 뒤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다 담겨 있다”고 말했지만, 언론에는 그의 공식 사과만 크게 부각됐고 작품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사과는 사과대로 그 의미에 합당하게 다뤄지고, 작품 역시 작품대로 다뤄져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그의 신작을 조명한다.
이야기는 몇 해 전 딸을 잃은 작가인 화자가 J시라는 곳으로 혼자 남은 아버지를 돌보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빈 우사에 갔다가 젊은 아버지가 리비아로 파견나간 큰 아들과 주고받던 편지를 읽기도 하고, 아버지와 연결된 다른 사람들을 통해 여려 겹의 아버지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서로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박무릉과 재회해 평생 친구가 되는 이야기와 그가 건넨 조언은 상처를 입은 화자를 뒤흔든다.
“살아가는 시간 속에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뤄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323쪽)
소설 막바지에선 화자가 저녁 무렵 아버지와 함께 오래된 마을을 산책한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들판을 가로지면서 화자는 생의 역동을 보게 된다. 특히 어떤 한 생, 한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도 파란 잎이 돋아나는 장면을.
“노목은 양옆으로 찢어지듯이 쓰러진 채로 계속 살아 있었다. 쓰러진 채 옆으로 자라난 가지가 굵기까지 하다. 그 어느 가지에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J시에 온 뒤 저 나무를 지금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쓰러진 채 살아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하다니.”(408쪽)
작가는 이 대목에 대해 “죽음과 어떤 새로 돋아나는 것이 한순간에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이라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어떤 깊은 내상을 통해 다른 존재에 더 가까이 가게 되고, 그렇게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음은 기자간담회 내용 가운데 작품 관련 부문과 추가 이메일 인터뷰의 종합.
―아버지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본격적으로 결심한 계기는.
“가족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간다. 가족 메신저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쓰는데, 아빠 이야기를 쓰고 말하는 건 서툴다는 것을 느꼈다. 저도 그렇고. 이름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사신 아버지들, 힘든 현대사를 통과한 대한민국 아버지들은 ‘내가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걸 느꼈다. 아버지의 심중에 들어 있는 말들이 어떤 말인지 찾아내고 싶은 작가적 욕망도 있었다. 언젠가 베를린에서 유대 박물관에 가게 됐다. 마지막에 「낙엽」이라는 작품을 보게 됐는데, 쇠로 된 얼굴을 2만개쯤 바닥에 깔아놓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쇠 얼굴에 발을 디뎠는데, 쩌그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끝까지 갔다 오니까 그게 다 비명소리로 들렸고, 집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격변의 시대를 겪은 아버지의 고통들, 그런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면, 내 책상에 앉게 되면, 아버지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J시는 “상실의 고통을 겪은 화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닳아지고, 뭔가 사라지고, 자기 마음 안에서 고갈돼 가고 있는, 어떤 것이 회복되는 공간으로서 J시로 돌아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어요. 사실 J시로 돌아가 딸이 아버지를 돌보는 것인지, J시와 아버지가 딸을 돌보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죠. 화자로서 뼈저리게 아픈 순간을 받아들이는 공간으로서 J시가 상징되고 있고요. 아버지의 생처럼 곧 사라질 운명에 있지만, 끝난 것 같이 보이는 그 자리에서도 뭔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것,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공간으로서의 J시입니다.”
―J시는 현실의 정읍시 같은데, 굳이 정읍이라고 밝히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
“소설 속의 J시는 정읍이 맞다. 딱히 정읍이라고 하지 않고 J시라고 한 것은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보낸 태생지가 있을 것이고, (그곳으로) 대체해서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했다.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J시는, 독자와 마찬가지인, 대자연의 의미를 띠고 있다.(J시와 관련해 차천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실화인가) 차천자가 교당을 지은 마을이 제가 자란 마을과 가까이 있고, 어린 시절에 자주 차천자가...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소설 속에서 가장 애착 갔던 인물은 누구인가.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소설 속에 나오는 장남, 큰 오빠 이야기가 계속 이끌려 나온다.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왜 이러는 걸까. 어느 순간, 아버지와 장남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아버지 이야기다, 라는 느낌이 왔다. 장남은 기대에 저버리지 않으려고, 뭔지 좀 약해 보이는 아버지와 함께 형제들 속에서 장남 역할을 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시절을 겪어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구분을 하지 않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고목나무처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와,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난 그런 순간을 겪으며 막 아버지가 된 조카, 이 두 아버지에게 우선 애착이 많이 간다. 생을 다 살아낸 아버지의 좋은 점들을 이 어린 아버지가 잘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도 있다.”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은 다층적이고 중층적이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거나 현대사 속에서 고통 받은 아버지, 가족으로서 아버지, 개인적인 사연을 가진 아버지,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 등. 특히 기존 가부장적 아버지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책 속의 아버지와 실제 아버지는 어느 정도 닮았나.
“소설 속의 아버지 모습 속에 따로 구분이 안될 정도로 제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실제로 일생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씀이 ‘말할 것이 없제’를 가장 많이 쓰신 분이다. 말 대신 늘 행동을 하셨다. 쓴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고, 빌려 쓴 것들은 해가 바뀌기 전에 갚고, 땅과 함께 살았기에 그 땅에 씨앗을 뿌리지 않고는 바라는 것이 없는 그런 삶을 본보기로 보여주셨다. 성품이 다정하셔서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끈 하나에 신발치수를 표시해 가족 모두의 털신과 내복을 숫자대로 사와서 신겨주시곤 했다. 정읍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라 눈이 내리면 사나흘씩 내리기도 했는데, 이른 새벽에 우물로 가는 길, 대문으로 나가는 길, 화장실로 향하는 길을 먼저 쓸어놓곤 하셨다. 제가 아버지에겐 첫 딸이어서인지 뭔지 어려워하면서도 특별히 다정하셨다. 머리를 많이 쓰다듬어 주셨고,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유난히 어디서나 제 이름을 많이 부르셨다. 경숙아, 경숙이냐? 경숙이구나! 하셨다. 전쟁과 여러 굴곡을 겪으시면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체화되신 분이라, 살아오는 동안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말할 것이 없제’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말을 무서워했던 분이었다.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다만, 전쟁을 함께 겪은 ‘박무릉’이라는 친구와 교류하는 대목에서 소설을 위해 보태진 대목이 많다.”
그는 책을 쓰면서 자신도 “아, 아버지는 우리가 말하는 소위 가부장적인 억압이 전혀 없는 분이셨구나, 내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그것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덕분에 아버지가 시대가 다를 뿐 현재 지금 필요한 영향력을 지닌 아버지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분이 ‘자신이 이 소설 속의 아버지 같은 분을 만났더라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아버지를 개별적인 한명의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보통 우리가 아버지, 특히 한국사에서 아버지라고 했을 때, 문학 속에서는 더더욱, 어떤 가부장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적이기도 한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다. 이 소설 속에선 아버지의 내밀한 부분에 집중했다. 아버지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미처 듣지 못하고 놓쳤던 내면들, 그런 아버지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썼던 작품이다. 그 시간이 너무 도저해 다 듣고 다 써내기는, 다 성찰해내긴 부족했다. 우두망찰하게 하는 시간이 많았다.”
신 작가는 ‘작품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느냐’라는 질문에 “심중에 앉아있는 침묵의 말들, 고통의 말들, 하고 싶었으나 늘 말할 것이 없제, 라는 말에 응축시켜놨던, 아버지 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요컨대 신경숙의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아무 이름 없이 한 세상을 살다 가는, 또는 살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헌사”쯤 될 것이다.
특히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신경숙의 전체 작품에서 보면 1970년대 산업사회에서 집을 떠나 도시에서 정착해 2021년까지 살아내면서 잠시 집으로 돌아온 한국인의 기록으로서, 장편 『외딴방』과 『엄마를 부탁해』에서 이어지는 3부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장편 『외딴방』이 16세에 J시의 집을 떠나 노동으로 생존하면서 작가를 향해 가는 이야기라면, 『엄마를 부탁해』는 집을 떠나간 자식들의 삶에 엄마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럼에도 그 엄마를 잃어버리고 마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며,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이 익명의 삶을 살아낸 아버지의 일생과 그 가족들이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지를 추적한 작품으로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
―차기작 계획은.
“15년쯤 된 모양인데, 그때까지 계속 다음 작품 어떤 작품을 쓰게 될 것이냐는 질문을 들으면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사람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노동자의 하루와 그에 얽힌 죽음의 문제를 다음 작품으로 쓰려고 한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아직 작품을 쓰지 않았기에 말을 아껴두겠다. 작품을 잘 완성할 수 있도록 저도 준비를 많이 할 것이고, 도움도 많이 받고 싶고 그렇다.”
가슴 속의 이야기를 말로 정확히 다 표현할 수 없어 글을 쓴다는 작가는 “문학은 제 삶에 어떤 알리바이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 그렇게 저 자신을 옭아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쓸 것입니다. 10년 후에 누군가 ‘너는 무얼 했느냐’고 하면 ‘글을 썼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20년 후에 ‘너는 무얼 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글을 썼다’고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소설 속 ‘모든 것이 끝난 그 자리에서도’ 쓰러진 고목에서 희망의 새 순이 돋아나듯이, 현실에서도 ‘죽은 사람처럼 기척이 없’는 ‘한번 죽은 사람’(323쪽)이 다시 회복해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문학의 대지에서 엎어진 자, 신경숙은 쓰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오늘도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힘겹게 한발 내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93쪽) 봄은 왔지만, 신경숙에겐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2021.3.9)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창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