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 내 인종차별을 폭로한 인터뷰 후폭풍이 거세지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침묵을 깨고 직접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여왕은 손자인 해리 왕손 부부가 제기한 인종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것이라면서도 ‘왕실 내부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영국 왕실은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대신해 낸 성명에서 “제기된 문제들, 특히 인종과 관련된 것은 매우 염려스럽다. 일부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이 사안은 매우 심각하게 다뤄질 것이고 가족 내부에서 사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왕은 “모든 가족은 해리 왕손과 그의 배우자 메건 마클이 지난 몇 년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두 알고 나서 슬퍼했다”며 “가족들은 해리, 메건, 아치(해리 부부의 아들)를 늘 사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성명은 해리 왕자와 부인 마클이 지난 7일 미 CBS방송에서 방영된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종차별 의혹 등을 제기해 큰 파장이 일면서 왕실에 대한 비난과 해명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인터뷰 방영 이틀 만인 이날 밤늦게 발표된 성명은 3문장, 61글자로 간략한 분량이었다.
애나 화이트록 런던대 역사학 교수는 AP통신에 “여왕의 성명은 길지는 않지만 매우 분명한 의도를 담고 있다”며 “가족 문제로 마무리 지어 왕가 기관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에서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클은 인터뷰에서 첫아들 아치가 태어났을 때 왕실 사람들이 아들의 피부색이 어두울 것을 우려해 아들을 왕자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마클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다.
한편 이날 해리 왕손 부부에 대한 도를 넘은 비판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영국의 유명 방송인 피어스 모건이 ITV의 간판 프로그램 ‘굿모닝 브리튼’에서 결국 하차했다. 그는 지난 8일 아침 방송에서 “미안하지만 마클의 말을 한마디도 신뢰하지 않는다”며 “마클이 일기예보를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