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싸우는 육군 장병들을 공중에서 지원하는 헬기는 현대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 전력이다. 국방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헬기의 성능이 강화되고 쓰임새도 다양해졌으나 ‘조종사가 헬기만 운용하는’ 특징은 수십년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고정관념에 변화가 일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인 드론이나 무인기를 탑재하는 유·무인 복합체계(MUM-T)를 헬기에 적용하는 개념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다.
◆미래전 트렌드로 주목받는 유·무인 복합체계
전차나 군함 등 기존 무기에 무인 장비를 추가하는 개념은 예전부터 군과 방위산업계 등을 중심으로 거론되어 왔다. 실시간 네트워크 체계로 연결된 유인 전투함과 무인 수상정, 중형 잠수함과 무인 잠수정, 유인 차량과 지상로봇 간의 연합작전이 대표적이다.
유인 헬기는 전투기나 수송기가 활동하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도 임무를 손쉽게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지상 공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라크전쟁이 벌어졌던 2003년 3월 23일 밤, 미군은 바그다드 남부의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를 소탕하고자 AH-64 공격헬기 32대를 동원했다. 30㎜ 기관포와 헬파이어 대전차미사일, 롱보우레이더로 무장한 AH-64는 공화국수비대를 무너뜨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이라크군이 AK-47 소총을 쏘며 반격을 하면서 AH-64 32대 중 31대가 피격,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반도 유사시 한·미 연합군도 이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한반도처럼 산이 많은 지역에서 헬기 조종사들은 산 너머에 적이 있을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산악이나 도시 지역에 매복한 북한군이 AK-47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면 헬기들은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군 소식통은 “워게임을 하면 북쪽으로 날아간 공격헬기 중 절반 이상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드론을 띄워 작전 지역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헬기 조종사는 적으로부터의 위협을 최소화하면서 다양한 작전을 펼칠 수 있다. 공격 지점을 드론으로 먼저 정찰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후 미사일로 정밀타격하는 작전이 가능하다. 폭발물을 장착한 드론이 있다면 자폭공격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전투기가 주로 실시했던 적 레이더나 지대공미사일 포대 등 방공망을 파괴하는 작전도 헬기가 수행할 수 있다. 적지에 고립된 아군을 찾는 작전과정에서 드론으로 아군의 위치를 사전에 확인하면, 구조 헬기의 작전도 용이해진다.
AH-64처럼 비싼 공격헬기를 갖출 필요성도 낮아진다. 공격헬기는 다수의 드론을 탑재할 공간이 부족하다. UH-60 등 병력을 수송하는 헬기에 자폭용 드론을 탑재하면, 먼 거리에서도 지상 표적을 파괴할 수 있다. 헬기에 드론이나 무인기를 결합한 유·무인 복합체계가 주목받는 이유다.
헬기에 탑재될 드론 또는 무인기는 위험 수준이 높은 곳에서 활동하는 만큼 적에게 격추되거나 돌풍으로 추락하는 등 손실률이 높으므로 대량생산을 통한 재고 확보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 구조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산 무장헬기에도 적용되나
국내에서도 헬기에 유·무인 복합체계를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내 기술로 개발한 소형무장헬기(LAH)와 드론 또는 무인기를 연동하는 것이다.
LAH를 활용한 유·무인 복합체계를 추진하는 것은 LAH의 확장성을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내 기술로 만든 첫 소형민수헬기(LCH)를 개조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LAH는 다른 공격헬기와 달리 동체 내부 뒷부분에 여유 공간이 존재한다. 이를 활용하면 다수의 드론을 탑재하거나 운용인력을 태울 수 있다.
LAH에 유·무인 복합체계를 탑재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단계는 LAH에 국내 개발 무인기를 연동하는 것이다. 헬기에서 무인기 조종을 통제하고, 드론에서 전송하는 영상을 비행 등에 활용할 수 있다. LAH와 무인기가 이미 확보돼 있어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신속 구매하면 2년 안에 시범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LAH 내부 공간에 캐니스터(발사관) 발사형 드론을 탑재, 정찰과 타격용으로 쓰는 유·무인 복합체계 2단계도 이르면 5년 안에 실현이 가능할 전망이다. 방위사업청 이보형 헬기사업부장(육군 준장)은 지난달 24일 경남 사천시 KAI에서 열린 LAH 브리핑에서 “대대급 공격형 무인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완료 시점이 2026년 정도”라며 “다연장식으로 무인기를 한데 묶어 헬기에 탑재하고 인터페이스를 보강하면 개발 진도에 맞춰 전력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사청과 KAI는 LAH에서 무인기를 발사한 뒤 이를 조종·제어해 정찰과 수색·구조 임무와 더불어 무인기에 내장된 공격무기를 활용해 주요 표적을 안전하게 정밀타격하는 단계까지 유·무인 복합체계를 발전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장은 “유·무인 복합체계는 유인기 단독 작전과 비교할 때 생존율과 작전 효과를 50% 높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과의 기술 협력도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KAI는 지난 3일 이스라엘 방위산업체 IAI와 유·무인 복합체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LAH에 IAI에서 개발한 무인기를 탑재, 유·무인 복합체계를 시현하는 것이다. KAI의 헬기 기술과 IAI의 무인시스템 역량을 결합하면 LAH의 능력을 빠르게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양측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올해 안에 유·무인 복합체계를 시현한다는 방침이어서 국내 유·무인 국방 기술 융합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