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버들 나무 심는 걸 막을 방법은 없어요.”
경기지역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농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A씨가 땅투기 수법으로 알려진 묘목 심기에 대해 전한 말이다. 그는 “농지 취득 시 서류나 현장조사 절차를 거치고 필요한 경우 (소유자) 면담을 거친다”면서도 “사실상 승인이 거부되는 경우는 없고 보완점을 마련하는 식에 그친다”고 말했다.
허술한 농지법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비롯해 ‘부동산 투기꾼’들의 투기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불거진 가운데 현장의 농지관리가 허술한 탓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농지 매입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18일 현행 농지법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는 일정 기간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농지를 원래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하거나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사실이 드러난 경우 등이 해당한다. 처분 의무가 부과되면 1년 이내에 해당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 1년 후에도 처분하지 않으면 처분명령이 내려지는데 이후 6개월 안에 처분을 완료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나온다.
하지만 ‘간단한 작업’만으로도 처분명령을 유예받거나 명령이 아예 취소되는 경우가 많다. LH 직원들이 심은 용버들과 에메랄드그린 같은 묘목 심기가 대표적이다. 농지법은 논밭이나 과수뿐 아니라 조경이나 관상용 묘목을 심어도 농지로 인정하는데, 행정명령을 받고 묘목을 심어 농지임을 인정받는 것이다.
수도권 지자체에서 농지 취득 업무를 하는 공무원 B씨도 최근 용버들 나무가 심어져 있는 농지를 발견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했다. B씨는 “소유자가 영농계획서에는 채소를 경작한다고 했지만, 현장에 가보니 용버들 나무와 또 다른 관상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작을 한다고 신고한 땅에 창고나 건축물이 들어서는 등 가시적으로 농지가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담당 공무원들도 제도와 인력의 한계로 형식적인 사후관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B씨는 “매년 농지를 조사하고 있지만 전수조사를 할 수는 없다”며 “최근 신규 취득한 농지에 대해서만 농지로 사용되는지 확인을 한다”고 했다. A씨도 “기획부동산이 의심되는 경우 원상복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투기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면서도 “제도적 한계가 명확하고 부서의 인력도 부족하다. 내부에서도 기피하는 부서다”고 토로했다.
LH 사태로 농지가 투지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정부는 농지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투기를 막기 위해 1000㎡ 미만 농지를 매입할 때도 영농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1000㎡를 초과하는 면적에 대해서도 투기가 이뤄졌던 만큼 투기 근절에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예림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지자체의 인력이 부족해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국 팀장도 “경작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도록 하는 전담 기구를 출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