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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신라 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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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적(玉笛)은 옥으로 만든 피리다. 역사적인 보물인 ‘신라 옥적’이 사라질 뻔한 사연이 공개됐다. 아라키 준 경북대 인문학술원 연구원이 고고학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다. 내용인즉 이렇다. 1909년 통감부(조선총독부 전신) 소네 아라스케 부통감이 경주로 가 나흘간 관아를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무엇을 찾고자 한 걸까. 허탕을 쳤다. 얼마 후 경주 관아의 관기(官妓) 창고에서 새까맣게 바랜 목재함이 발견됐다. 함에는 옥적이 들어 있었다. 이듬해 경성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1921년 대대적인 반환 운동이 벌어졌다. “옥적을 경주에 돌려놓으라”고. 양식 있는 일본인까지 가세했다. 옥적은 2년 뒤 제자리로 돌아왔다.

일본인 부통감은 옥적을 찾고자 한 걸까. 알 수 없다. 일본인에게 피리는 어떤 물건일까. 한반도의 옛 피리는 일본인에게도 귀한 물건이다. 일본 헤이안 시대(794∼1185년)에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걸작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곳곳에 고려적(高麗笛) 이야기가 나온다. 불운한 황녀 온나산노미야가 간직한 물건도, 겐지가 태정대신에게 건넨 선물도 고려적이다. 고려 음악도 유행했다. 헤이안 시대는 통일신라·고려 시대와 겹친다.

한반도의 옛 피리를 귀히 여기는 일본의 전통. 일제강점기 때에도 이어졌을 성싶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보물 만파식적(萬波息笛)이 있다. ‘삼국유사’ 기이2. 681년 왕위에 오른 신문왕은 삼국통일 후 스스로 해중릉에 묻혀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지었다. 이듬해 5월 바다에서 밀려온 작은 섬. 그 위엔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감은사에 나타난 용은 왕에게 말했다.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립시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삼국유사 기록,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에는 비가 그치며….”

신라 옥적이 바로 만파식적일까. 그렇다고 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대나무가 옥으로 바뀐 걸까. 만파식적이든 아니든 경주박물관 수장고에서 옥적을 꺼내 매일 아침 불어보면 어떨까. 맑은 옥적 소리가 거짓과 부패에 찌든 이 나라 정치를 바꾸기를 빌며.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