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23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꺾고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되면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일대일 구도가 확정됐다.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차기 대선을 11개월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대선 전초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정권 탈환’을 위해 모두 이번 승부에 사활을 걸었다. 거대 양당 간 ‘미니 대선’이 된 셈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이날 오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 결과 오 후보가 승리했다고 공동발표했다. 전날인 22일 서울시민 3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오 후보는 오차범위를 벗어난 격차로 안 후보를 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당은 정확한 득표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중도 사퇴한 오 후보는 이로써 10년 만에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게 됐다.
오 후보는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년을 무거운 심정으로 살았다”고 울먹이며 “단일화로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의 길을 활짝 열라는 시민 여러분의 준엄한 명령을 반드시 받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안 후보를 향해서도 “정권 심판의 전쟁에서는 저의 손을 꼭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안 후보는 “야권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돕겠다”고 응답했다. 안 후보는 오 후보의 요청에 따라 국민의힘에서 서울시장 보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민주당은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 보상 의혹’과 시장직 사퇴 전력을 더욱 부각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오 후보를 “MB(이명박) 아바타”, “거짓말쟁이”로 규정하며 전면전에 나섰다. 박 후보는 단일화 결과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제 구도는 확실해졌다”며 “서울의 미래 박영선 시장이냐, 낡고 실패한 시장이냐의 구도”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 후보는 박 후보를 상대로 15%포인트 안팎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등이 터지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나란히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날 안 후보의 ‘철수’로 거대 양당 간 대결구도가 확정되며 범여권의 지지자 결집 현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안 후보는 정치적 색깔이 애매모호해서 (여권 지지층의) 경계심이 덜한 반면 오 후보 뒤에는 국민의힘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범여권 유권자들이 이를 의식해 더 강력하게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도 오 후보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를 15%포인트 이상 차이로 앞섰으나, 실제 개표 결과 0.6%포인트 차이로 간신히 승리를 거뒀다.
보궐선거 투표율이 낮은 점 역시 변수로 꼽힌다. 서울 내 조직력이 강한 민주당에 유리한 대목이다. 서울 지역 국회의원 49명 중 41명, 구청장·시의원 중 90% 이상이 민주당 소속이다.
청와대 역시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한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 국정평가 지지율과 관련해 “국민의 마음을 청와대는 엄중히 여기고 있다”며 “투기 근절 관행이 바뀌는 계기로 삼도록 정부는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여권·여성 후보 이점에도 ‘박원순 그늘’은 극복 과제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삼수생’이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졌다. 2018년 6·13 지방선거 때도 민주당 경선에서 박 전 시장에 후보 자리를 내줬다.
박 후보는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우상호,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을 꺾고 ‘범여권 단일후보’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박원순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박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며 유명을 달리했고, 민주당이 ‘재보선 발생 책임이 있으면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기존 당헌까지 고친 끝에 박 후보가 출마해서다. 후보가 된 이후에도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관련 ‘피해호소인’ 논란을 일으킨 남인순·진선미·고민정 의원에게 ‘2차 가해’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들 모두 캠프 보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박 전 시장이 ‘그림자’만 선사한 것은 아니다. 투표율이 낮은 보궐선거는 조직력이 승패를 좌우하므로 여권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다. 현재 서울 지역 국회의원 49명 중 41명, 서울시의회 의원 109명 중 101명, 서울 내 자치구 구청장 25명 중 서초구청장을 제외한 24명이 민주당 소속으로 당 차원에서 서울 내 조직을 총동원할 수 있다.
여성 후보로서 얻는 이점도 적지 않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 모두 전임 남성 시장의 성비위로 촉발된 보궐선거인 만큼 남성보단 여성 후보에 표심이 몰릴 수 있다. 박 후보는 헌정 사상 첫 여성 법제사법위원장(2012∼2014년), 첫 여성 교섭단체 원내대표(2014년·새정치민주연합)라는 기록을 남겼다. ‘첫 여성 서울시장’의 타이틀에 도전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부동산 문제 해결이 4·7 재보선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불거졌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34.1%)와 당 지지율(26.2%)이 현 정부 들어 최저치로 내려앉은 여론조사(22일, YTN·리얼미터)가 발표되면서, 선거를 2주가량 앞둔 시점에 ‘정권 심판론’이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 후보 남편 소유의 ‘도쿄 아파트’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국민의힘은 ‘초호화 아파트’ ‘야스쿠니 뷰’ ‘진정한 토착왜구’라며 원색적인 공세를 쏟아냈다. 박 후보 측은 이에 “그 아파트는 지난 2월 처분했다”고 해명했고, 23일 국민의힘 성일종·김은혜·김도읍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후보자 비방) 및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MBC 기자 출신인 박 후보는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서울 구로을에서 내리 3번을 이겨 4선에 성공했다. 2017년 17대 대선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의혹’을 앞장서 비판해 ‘MB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약 1년10개월간 제2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현안·정책 디테일 강한 면모… 무상급식 투표는 ‘아픈 상처’
야권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최종 후보가 된 오세훈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따른 시장직 사퇴 이후 10년 만의 도전이다.
오 후보의 최대 강점은 극적인 승리 과정에서 드러난 지지율 상승세가 꼽힌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유권자들에게 상승 바람을 각인시키면서 경쟁력을 얻었다는 평가다. 계명대 김관옥 교수(정치외교학과)는 23일 통화에서 “오 후보는 예비경선에서 나경원 후보를, 본경선에선 안철수 후보를 모두 격파하고 올라가는 기세를 보여줬다. 내 표가 사표가 되는 걸 싫어하는 유권자들에게 사표와 거리가 먼 후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며 “유권자들은 역전의 승리 과정을 후보의 힘으로 본다”고 말했다. 야권의 단일화 무대가 효과를 거둔 셈이다.
오 후보의 서울시정 경험과 현안에 대한 깊은 이해력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후보 측도 ‘첫날부터 능숙하게’를 구호로 정하고 시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오 후보는 경선 토론에서도 서울시 현안과 정책에 대해 디테일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맞붙어 안정감을 보여줄 것으로 야권은 기대하고 있다.
중도 확장성도 강점이다. 오 후보는 보수 정당에서 극우·수구적 보수 세력과 달리 젊고 합리적 이미지를 쌓아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경쟁에서 선전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안 후보에 대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압박 전략에 맞춰 발톱을 세우면서도, 동시에 안 후보 측에 연정을 제안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단일화 룰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무선 100% 등 안 후보 측 요구사항을 수용한 점도 유연한 정치인이라는 호감을 샀다. 보수 정당의 다른 후보에 비해 국민의당 지지층 이탈표가 그나마 적게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오 후보는 제1야당 후보인 점에서 단단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기호 2번(국민의힘)이 아니라 4번(국민의당)으로는 국민의힘 조직이 결집하지 않을 공산이 있다. 하지만 오 후보가 뽑히면서 제1야당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선거 운동에 나서게 됐다.
다만 민심의 화약고가 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발목 잡힌 부분이 최대 리스크다. 민주당은 오 후보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처가의 내곡동 땅 ‘셀프보상’ 의혹을 제기하며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오 후보는 내곡동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내곡동 문제는 LH 사태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내부정보를 이용해 특혜를 받은 부분이 나온다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1년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서울시장직을 내건 점도 허물이자 약점이다. 당시 재선 1년 만에 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했다가 결국 시장직을 반납했다. 민주당 측에 서울시장을 내주고 당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난 기본소득 등 코로나19 사태로 보편적 복지 요구가 커진 상황에서 오 후보의 ‘복지 인식’도 여권의 공격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장혜진·배민영·이도형·이동수·이현미·곽은산 기자 janghj@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