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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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청년의 밥솥’ 깨는 정치

195만개 풀타임 일자리 없애고
나랏빚 살포해 ‘표 사는’ 정권
‘연못 물 말려 물고기 잡는’ 꼴
청년에겐 절망과 빚만 남을 것

정치란 무엇일까. ‘논어’ 안연편에 답이 나온다. 공자가 자공에게 말한다. “먹을 것을 풍족히 하고(足食) 군사를 강하게 하며(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民信)”이라고. 정치란 알아듣기 힘든 형이상학적 변설이 아니다. 왜 ‘족식’을 앞세운 걸까. 백성을 굶주리게 하면? 어떤 권력도 유지되지 못한다. 민란이 일고, 권력자는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기에 이런 말을 한다.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한 고조 유방을 도운 역이기의 말이다. 이 말은 제왕의 교본인 ‘정관정요’의 수미를 관통하는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강호원 논설위원

지금은 어떨까. 반세기 넘도록 이어진 경제발전. 풍요롭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근본적인 고민은 해결됐을까. 가난과 절망은 아직도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배회한다.

추락하는 경제. 모두가 피부로 느낀다. 고용·소득·부채·생산 통계가 나올 때마다 절망적인 상황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2월 고용통계도 그렇다. 취업자 53만명 감소.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두고 뭐라 했던가. “고용상황 개선 흐름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얼토당토않은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며 최저임금 충격으로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무너지는 판에 했던 말과 빼닮았다. 왜 그런 말을 할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경제 실정(失政)’의 불이 정권심판론과 레임덕으로 번지는 것을 걱정했던 걸까.

국민은 어찌 생각할까. 벅찬 가슴으로 “이제 희망의 볕이 들기 시작했다”고 할까. 누가 곧이듣겠는가.

‘묘한 말’을 했으니 다른 통계를 한번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풀타임 일자리’로 분류되는 주 40시간 이상 일자리는 현 정부 들어 195만개나 사라졌다.

이런 일은 왜 벌어졌을까. 코로나19 충격 때문에?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 4년간 일자리를 없애는 엉터리 정책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기업인과 고용주를 적대시하면서 최저임금을 턱없이 올리고, 무거운 세금을 물리며, 기업에 족쇄를 채운 정책들. 그리고 외쳤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관공서마다 남아도는 공무원을 17만명 더 늘리겠다고 할 때도, 뉴딜 구호를 외칠 때에도 대통령부터 그렇게 말했다. 무엇으로? 세금과 나랏빚으로.

오죽 답답했으면 원로 재정경제 관료는 이런 말을 했다. “세금 쓰는 일자리가 아니라 세금 내는 일자리를 만들라.”

그 결과는 무엇일까. 멀쩡한 일자리는 증발하고, 온 나라는 ‘알바 천국’으로 변했다. 정부가 지난해 만들었다는 일자리는 124만개. 십중칠팔은 월 20만원 중반의 노인 공공 아르바이트다. 알바 공공일자리로 통계 물타기를 하면서 대통령은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는 것인가.

불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고 중소기업은 공장을 내다판다. ‘규제와 세금 덫’을 피해 대기업은 해외로 떠난다. 모두 현 정권 들어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판에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어찌 바라며, 잘살기를 어찌 기대하겠는가.

희망의 빛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더욱 그렇다. 사라진 일자리, 뛰는 집값. 그것만 문제일까. 청년 세대가 뒤집어쓸 최악의 유산은 폭증하는 나랏빚이다. 현 정권 5년 동안 불어나는 나랏빚은 공공기관 빚을 합쳐 400조∼500조원에 이른다. 구세주라도 된 양 빚을 마구 살포한 결과다. 수혜자는 누구일까. 청년인가.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정치 권력자다. 최대 피해자는? 젊은 청년들이다. 인심은 기성세대인 정치인이 쓰고, 빚은 청년들이 갚아야 하니. “무상은 좋은 것”이라고 했던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세대는 바로 청년과 어린 아들딸 세대다.

‘정관정요’를 다시 펼쳐 본다. 위징은 말했다. “연못의 물을 말려 물고기를 잡으려 하면 잡지 못할 것도 없지만 이듬해에 다시는 물고기가 없을 것이며, 숲을 태워 사냥을 하면 짐승을 잡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 다음해에는 다시 짐승을 보지 못한다.”

청년들의 밥솥을 깨는 정치. 그것은 연못의 물을 말리고, 숲을 불태우는 간악한 정치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