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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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장기화에 사라진 고시생들… 얼어붙은 노량진의 봄 [밀착취재]

"금요일·주말에도 사람 많지 않다"
대면 수업 줄자 수험생들 대거 이탈

북적이던 컵밥거리까지 발길 끊겨
점심시간에도 비어있는 가게 많아
2018년 2월 20일 북적이는 노량진 컵밥거리와 2021년 3월 26일 컵밥거리가 한산한 모습. 이재문·장한서 기자

“원래 2∼3월이 최대 성수기라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파리 한 마리 없어요.”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A씨는 손님 한 명 없는 매장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매장 안에는 직원 5명이 택배로 보낼 공무원 시험 서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나마 인터넷 강의를 듣는 수험생들이 책을 택배로라도 주문해 버티고 있지만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오프라인 수요는 반 토막이 났다.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31일 노량진 거리는 황량했다. 건물 곳곳에 임대문의 딱지가 붙어 있었고, 전체가 비어있는 건물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수험생들이 고시촌을 떠나면서 노량진 상권 전체가 위기를 맞이한 모습이었다.

 

수험생들이 오전 수업을 마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북적거렸던 컵밥거리에도 발길이 끊겼다. 20개가 넘는 가게 중 영업을 시작했거나 준비 중인 가게는 8곳뿐이었다. 한 컵밥집 사장은 “노량진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는데 이런 적은 없었다.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열겠냐”며 “이전에 하루에 100개를 팔았다면 요즘은 30개를 판다”고 한탄했다.

 

점심시간에도 비어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 문을 연 한 피자집에도 주인 혼자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노량진은 다 고시생 장사인데 코로나19 이후론 홀에는 아예 사람이 없다시피 한다”며 “하루에 (손님) 2∼3팀을 받아 많아야 5만원 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시촌에 고시생들도 없으니 배달도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의 한 서점에 손님 없이 책만 쌓여 있다. 장한서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의 한 건물 전체가 비어있다. 장한서 기자

지난해 노량진의 한 대형 임용고시학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후 일대 상권이 입은 충격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학원들은 대면 수업을 대폭 온라인으로 전환하자 고시촌에 상주하던 수험생들도 노량진을 떠났다. 노량진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점포가 여러 개였던 유명한 독서실도 절반은 줄였다”면서 “그나마 유명한 가게들은 버티고 있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들은 금방금방 방을 빼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보건소 내 선별진료소에서 학생들이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뉴스1

노량진을 오가는 사람들 역시 크게 줄었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에 따르면 2019년 2월 222만6193명이었던 서울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유동인구는 지난해 2월 188만6963명으로, 지난 2월에는 147만4416명으로 크게 줄었다. 2년 사이 약 75만명이 감소한 것이다. 7급 외무영사직을 준비하는 박모(27)씨는 “평일뿐만 아니라 금요일이나 주말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며 “예전부터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은 사람이 정말 많이 줄었다고 놀라워한다”고 했다.

 

유지혜·장한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