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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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강다리 난간에 선 20대… 시민들 ‘부모 된 마음’으로 구했다

행주대교서 극단 선택 시도 여성
퇴근길 발견한 부부 급히 차 세워
몸 붙잡고 다독이며 구조대 불러
뒤차에 있던 남성들도 같이 도와
“인생 힘들어도 살아봐야” 당부

“내 자식 같아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한강 다리 위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던 20대 여성을 퇴근길 시민들이 달려가 구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10분쯤 서울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에서 다리 난간을 넘어가고 있던 A(27)씨를 시민들이 붙잡아 구조했다.

 

가장 먼저 나선 건 차를 타고 다리를 지나가던 강모(62)씨 부부였다. 자영업자인 강씨는 업무 때문에 강화도에 다녀오던 중 우연히 A씨가 다리 난간에 발을 걸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다급하게 경적을 울리며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A씨가 멈추지 않고 하반신을 난간 바깥쪽으로 넘겨 다리에 걸터앉자 급히 차를 세웠다.

 

강씨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운전을 하다가 젊은 여자가 다리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봤는데 갑자기 넘어가길래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며 “조수석에 있던 아내가 차에서 내려 뛰어가 (여성의) 몸을 잡았다”고 전했다.

 

강씨가 차를 세우자 뒤따라 오던 차량도 멈췄다. 해당 차량은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조수석 남성이 달려 나와 강씨 아내와 함께 A씨의 몸을 붙들었고 운전자는 다른 차량들의 통행을 통제했다. A씨는 당시 몸이 난간 바깥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지만 강씨 아내 등이 힘을 합쳐 다시 인도 쪽으로 내려놨다. 조금만 늦었어도 다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강씨는 “(A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엉엉 울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채로 넘어간 거라 자칫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강씨가 119 신고를 하는 동안 강씨의 아내는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나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며 A씨를 달랬다. 뒷차 운전자 등은 교통 흐름이 원활하도록 도왔다.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서소방서 구조대원들이 올 때까지 10여분간 A씨를 다독이며 데리고 있었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씨는 “다리로 뛰어가던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빨리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무사히 이송되는 걸 본 뒤에야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들었다. 만일 구하지 못했다면 우리 부부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기 있는 행동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했지만, 강씨 부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A씨와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뒀다는 강씨는 “젊은 사람을 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 자식 같아서 나선 것뿐 별일 아니다”며 웃어 넘겼다. 다만 서럽게 울던 A씨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엉엉 울면서 ‘살기 싫다’고 하길래 ‘인생은 살아봐야 한다’고 다독였는데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내 자식 생각도 나고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힘든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누구든 A씨가 했던 행동을 보면 주저하지 말고 달려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인생은 힘들어도 살아봐야 합니다. 제대로 시작도 안 해보고 좌절하면 안타깝잖아요. 단번에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기를 가지고 계속 부딪쳐 보세요.”

 

유지혜·김병관 기자 keep@segye.com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