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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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걸릴 자율주행차 기술시험 1년이면 완성... 가상도로에서 2000대 동시 주행도 가능 [모빌리티 열전]

조병욱 기자의 ‘모빌리티 열전’⑦
정지원 모라이 대표 인터뷰

“2021년 5월5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도로 1차선. 도심을 주행중인 차량 사이로 A사의 자율주행차 B 모델이 운행중이다. 이때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도 나타났다. 주변에 차량들이 늘어나며 교통체증도 시작됐다. 자율주행차 B는 변화하는 교통환경에 대응해 속도를 줄였고, 갑자기 나타난 보행자를 피해 안전하게 대응했다. 이 가상 세상에서도 불법 유턴이나 신호위반을 하는 차량이 있고, 이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위 상황은 자율주행차를 소프트웨어상에서 미리 시험해 볼 수 있는 시뮬레이터(모의시험 장비) 속 가상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자율주행차를 위한 온라인상의 모의시험 환경을 만드는 기업 모라이의 정지원(32) 대표를 지난달 24일 서울 사무실에서 만났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던 대학원생 정 대표는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자율주행 시뮬레이터 기업을 창업했다. 이들은 창업 3년 만에 현대차, 네이버, 카카오벤처스 등 미래 모빌리티 관련 주요 기업들의 투자를 받았다.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도 두 차례나 출품하며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업으로 고속 성장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풀었다.

 

-모라이는 어떤 회사인가.

 

“가상 환경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와 평가, 검증을 할 수 있는 자율주행 시뮬레이터를 개발한다. 실제 도로와 정밀지도를 이용해 실제와 동일하게 구현된 디지털 트윈(쌍둥이) 환경을 만들어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수만, 수천 가지 경우의 수를 미리 효율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기업이다.“

 

-처음 창업은 어떻게 시작했나

 

“대학원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면서 실증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연구실의 적은 인력으로 실도로에서 자율주행 테스트를 하는 게 비효율적이고 힘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괄목할 성장이 안 나오는 시기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뮬레이션(모의시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 시장을 보니 자율주행에 특화된 시뮬레이터가 없었다. 대학원에서 알던 동문 3명이 함께 시작하게 됐다. 공동대표인 홍준 CTO는 같은 연구실에 있었고, 또다른 공동 창업자인 이수관 CPO는 인공위성 시뮬레이터를 연구하고 있었다. 우주분야는 처음부터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가상의 상황을 상정한 연구가 많다 보니 우리 기술에 큰 도움이 됐다.“

 

-회사 이름은 무슨 뜻인가.

 

“모라이(MORAI)의 MO는 모빌리티, R은 리서치, AI는 인공지능으로 모빌리티와 관련한 연구를 인공지능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다. 처음 자동차의 후진할 때 ‘오라이(All Right)’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한 것도 감안했다.”

 

-회사의 성장이 빨랐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 자율주행차를 10대 이상 만들었고, 국내 10개 지역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직접 테스트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가 어떤 걸 필요로하는지, 엔드유저(최종 수요자)의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야하는지 목표가 뚜렷했다. 이를 위해 핵심 개발자들이 개선하고자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자율주행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나.

 

“회사 초기에는 자율주행차를 직접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런데 스타트업 특성상 적은 인력이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하드웨어 작업이나 테스트 드라이버까지 필요한 자율주행차를 직접 개발 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고 그 결론이 시뮬레이터였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앞당기고자 한다.”

 

지난달 24일 서울 모라이 본사에서 자율주행차를 위한 소프트웨어 시뮬레이터(모의 시험)를 개발한 정지원 모라이 대표가 자신이 만든 가상 세계를 보여주며 기술력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시기는?

 

“초창기에는 정말 많이 어려웠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도 있었지만 자취방이나 냉난방도 잘 안 되는 창고 같은 곳에서 1년여를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했다. 돌이켜 보면 지금은 즐거운 추억이다. 두 번째는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대기업과 프로젝트를 하는데 돈을 어음으로 받았다. 이때 현금 유동성을 잘못 계산해서 중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돈은 나가야 하는데 당장 현금은 부족하고 그런 어려움도 있었다.”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나

 

“창업 초기에 여러 연구소나 학교들에서 저희 제품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로운 인력도 뽑고 회사를 조금씩 성장시키면서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했다. 자금이 부족할 때는 다양한 대회에 출전해 상금도 받고, 지원사업, 인건비 지원 바우처 사업 등 눈에 보이는 여러 사업에 다 참여했다. 그때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내 지금에 이르렀다.“

 

-기업을 운영하다보면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기업가 정신이라던가, 인사 문제를 배우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원과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적절한 인센티브나 보상·평가 체계를 만드는데 이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개발자 업계에 분위기로 인해 기대감도 높다. 올해는 우리도 공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할 방침이다.”

 

-스타트업들은 채용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은데

 

“팀장급 국장급을 뽑고 나면 그분들이 새롭게 팀을 꾸리고, 새로운 사람을 섭외한다. 최근에는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직접 사업을 하기는 어렵고, 안정기에 접어든 회사에 합류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해외 경쟁사 대비 모라이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2016년 무렵 미국, 이스라엘, 유럽에서도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글로벌 10개사 정도가 경쟁사라고 생각된다. 최근에는 미국 자율주행 시뮬레이터 기업 ‘어플라이드 인튜이션’이 기업가치를 1조원으로 평가받아 2000억원을 투자받았다. 기술력에서는 모라이가 해외 업체와 비슷하거나 특정 기능에서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해외 사업화를 진행하면서 충분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모라이의 시뮬레이터는 업계에서 얼마나 쓰이고 있나.

 

“현대차, 네이버랩스, 삼성엔지니어링 등 기업, 카이스트 등 연구소, 대학까지 60여곳의 고객들이 우리 시뮬레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고객사들은 시뮬레이터에서 어떤 기능을 원하나

 

“새로운 센서를 넣어달라거나, 차선을 물고 주행하는 차, 칼치기하는 차, 이상하게 운전하는 오토바이, 킥보드 운전자 등 다양한 도로주행 상황을 상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면 판교나 제주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를 하다 보면 갑자기 사람이 끼어드는 무단횡단 모델이 나온다. 이를 시뮬레이터 환경에 넣어 테스트하도록 하는 식이다. 또 가시거리, 강수량, 강우량, 가로등 조명 밝기, 해의 방향, 역광 등 여러가지 현상 조절하며 테스트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상 세계는 어떤 곳인가

 

“시뮬레이션 상에서는 시간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가게 할 수 있다. 너무 빠르게 하면 정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만, 느리게 해서 현실보다 더 자세히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자율주행차 1대를 만들었다면, 이 차량을 100대로 복사해 각기 다른 상황과 환경에서 주행시켜보면 쌓이는 데이터의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 예산과 서버의 용량 등만 뒷받침된다면 이론상으로는 무한대로 차량과 환경을 늘려서 실험할 수도 있다. 현재 통상 2000대 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만들어서 구현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1달이 걸릴 실험을 하루 이틀이면 끝낼 수 있다.”

 

-자율주행 시뮬레이터 시장은 제한적일 것 같은데, 향후 계획은.

 

“크게 비즈니스를 3가지로 타깃을 잡고 있다. 교육기관, 일반 기업, 정부기관이다. 시뮬레이션 툴을 개발이나 연구에 활용하기도 하고, 정부에서는 차량 관련 인증 평가에도 활용할 수 있다. 고객의 폭도 넓혀나가려고 한다. 자율주행의 특정 부품, 서스펜션 이런 단위 부품 개발하는 회사도 시뮬레이터를 통해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다. 또한 신사업 분야로는 국방이나 철도, 로봇, 드론, UAM, 무인 선박, 자율주행 로봇, 전기차 충전 인프라 쪽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모라이 시뮬레이션 기술이 업계의 표준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자율주행차의 개발 및 검증 과정은 물론, 상용화 이후 인증평가를 위한 툴, 그 과정에서 개발들을 위한 툴 등 자율주행 산업 전반에 우리 시뮬레이터가 사용되도록 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사고 가능성을 미리 데이터로 확보하여, 이에 대응하는 기술이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사들은 더욱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만들고, 이를 위해 우리는 시뮬레이터에 대한 기술 혁신을 이루어 나가겠다.”

 

-스타트업 예비 창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망하면 어떡하나, 두려움과 기회비용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할 텐데 그 분들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신이 산업 분야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실제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또한 사업을 하면서 획득하는 경험이나 노하우, 주변 관계들은 나중에 다시 취업을 하거나 재창업 할 때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업은 리스크만 있는 도전은 아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 모빌리티 열전은? 이동성을 의미하는 ‘모빌리티’는 최근들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존 어리 영국 랭커스터대 교수의 논문을 보면 과거 단순한 교통수단을 의미하던 단어에서 이제는 그 기반이 되는 사회 시스템과 그에 관여하는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제조국인 한국에서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가 태동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부터 모빌리티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이를 만들고 기획하는 사람과 기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