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재건축·재개발 규제와 공시지가 산정 등 정부의 부동산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야권 소속 자치단체장이 가세해 정부의 과도한 시장 규제와 공시가격 산정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여권은 일관된 정책 기조가 흐트러진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해 갈등이 예상된다.
12일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여권은 정부의 기존 부동산정책에 대한 물밑 검토 작업을 벌인 결과, 큰 틀에서 정책 기조는 유지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비롯한 여러 상황 변화에는 대응하되, 공공부문 비중을 키워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투기 수요에 대해서는 과감히 철퇴를 가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방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올해 신년사와 참모진 회의에서도 여러 차례 재확인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경우 일괄 규제 완화를 시도하게 되면,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2·4 공급대책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을 비롯한 2·4대책의 정비사업 방향은 공공이 사업의 일정 부분에 참여하거나 전체를 주도해 공공성을 높이는 대신 용적률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오 시장 등 야권의 주장대로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면, 공공이 참여할 여지가 없어지는 만큼 정부가 2·4대책에서 제시한 주택 공급목표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부동산 세제 방침과 공시지가 산정 문제도 여권으로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강화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이 원칙을 바꾸는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릴 뿐 종부세나 재산세율 전면 개편에 심드렁한 배경이다.
정부가 공시지가 현실화 로드맵을 발표한 시점이 지난해 11월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2035년까지 공시가율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장기 정책 방향을 제시해놓고 불과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이를 뒤집는 것은 정책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경우 2·4대책 이후 간신히 안정세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홍영표 의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강남 집값이 3, 4월 들어 안정 하향추세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재건축 규제를 다 풀겠다고 해서 몇억원이 올랐다는 게 뉴스가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또 한 번 (집값 불안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가 있다”고 오 시장의 규제 완화론을 비판했다.
국민 절반가량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9∼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8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2∼3년 부동산 가격 급등 요인으로 ‘정부 정책 불신’을 꼽은 응답자가 47.5%로 가장 많았다. 이어 ‘투기 심리’(28.8%), ‘저금리’(9.1%) 등이 뒤를 이었고 ‘주택 공급 부족’이라는 대답은 8.7%에 그쳤다.
정부 정책 불신을 꼽은 응답자는 60세 이상(54.5%), 대구·경북(59.8%), 자영업(53.1%), 보수성향층(63.6%),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층(68.6%), 국민의힘 지지층(74.7%)에서 많았다. 반면 투기심리 때문이라는 응답자는 대통령 긍정 평가층(58.2%), 민주당 지지층(55.6%)에 많았다. 이번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로, 자세한 내용은 KSOI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박세준·이우중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