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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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美 청문회 선 文정부 인권

美하원 랜토스 인권위원회
韓정부 ‘위안부 결의’ 땐 훈장
‘대북전단금지법’ 비판하자
“정책 연구모임” 깎아내리기

한국 시간으로 지난밤(15일), 미 하원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한국 상황 청문회를 열었다. 김여정의 엄포로 문재인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밀어붙이고 국제적 비판이 고조되자 화살이 한국을 향한 것이다. 전단은 물론 USB 등 외부 정보의 북한 유입을 포괄 금지하는 과잉입법으로 북한 인권을 위협하고, 한국 내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랜토스 인권위는 1983년 고(故) 톰 랜토스 민주당 하원의원 주도로 창설되었다. 1928년 헝가리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랜토스는 나치 점령하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탈출했고 수천명의 유대인을 도와준 스웨덴의 ‘의인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랜토스의 어머니를 비롯한 일가족은 몰살당하였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

전후 장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정계에 입문한 랜토스는 미 의회의 유일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로 1981년부터 2008년 숨질 때까지 14선을 기록하였다. 첫 의정활동은 생명의 은인으로 전쟁 말 소련군에 잡혀가 실종된 발렌베리를 처칠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미국 명예시민으로 지정한 것이었다.

랜토스 의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83년 초당파 ‘의회 인권 코커스’를 만들어 세계 인권문제 공론화에 앞장섰다. 중국 정부의 요구에 반체제인사들의 이메일 기록을 넘긴 IT(정보기술) 거인 야후 경영진도 청문회에 세워 도덕적 ‘피그미’라 질타하였다. 랜토스 사후 낸시 펠로시 의장을 필두로 동료 하원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코커스’를 그의 이름이 붙은 ‘위원회’로 격상시켰다.

랜토스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도 개인적 인연이 깊다. 2007년 미 하원에서는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고, ‘위안부’ 결의(HR121)가 채택되었다. 그해 1월 하원 외교위원장에 취임한 랜토스 의원은 마이클 혼다 의원이 상정한 ‘위안부’ 결의안에 공동발의자로 힘을 실었다. 결의안 만장일치 채택 당시 랜토스 의원은 일본의 ‘위안부’ 역사 왜곡이 ‘구역질 난다’고 말했다. 이듬해 그가 80세로 세상을 떠나자 한국 정부는 ‘수교훈장 광화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지금은 랜토스 의원이 무덤에서 일어나 ‘한국은 배은망덕한 나라’라 일갈해도 할 말 없게 됐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했을 땐 훈장을 준 한국 정부가 자신의 분신 같은 위원회가 한국 문제를 짚어보려고 하니 깎아내리는 데 바쁘고, 저지 로비의 행태는 ‘위안부’ 청문회 때 일본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청문회 일정이 공개된 것은 지난 8일 랜토스 인권위 홈페이지를 통해서였다. 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정책 연구모임 성격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 하원 고위 관계자는 “청문회를 깎아내리려는 정치적 묘사”라고 즉각 비판했다. “청문회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핵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자 12일 이종주 대변인은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었다”고 발을 뺐다.

이 대변인은 “관계 전문가들의 여러 의견을 소개한 것”이라고 무마하려 했으나 어느 전문가의 의견인지 밝히지 않았다. 문제의 발언 하루 전인 8일 한 일간신문은 ‘톰 랜토스 인권위 정체는?’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날 통일부 브리핑과 흡사한 기사를 냈다. 언론 기사 하나 읽고 한 발언이라면 부대변인 자질 문제다.

통일부가 진화에 나선 12일 전 통일부 장관이 기름을 부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청문회가 4월 15일 김일성 생일로 예고되자 “일부러 그날을 맞춘 것” 같다며 “의도가 불순”하다고 말했다. 정 부의장은 “내정간섭”이라며 “주미 한국대사관이 미 의회에 손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발언과 거리 두고 싶어도 민주평통 의장이 한국 대통령이고 수석부의장이 부총리급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미 의회가 모를 리 없다.

랜토스 인권위에서 수집한 정보와 증인들의 진술은 주요 상임위에 포진한 41명의 민주·공화당 의원들과 공유되고, 바이든 행정부의 한국 재평가와 대북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