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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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기업 이사 겸직 변호사, 차명계좌로 수천만원 ‘성공보수’

서울변호사회에 진정 접수

의뢰인 “로비 대가로 2000만원 줘”
해당 변호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
대법선 “형사사건 성공보수 ‘사회질서 위배’”

檢에 피고인 혐의 변경 청탁 정황
녹취록엔 “바꿔달라 했는데 안돼”
지목된 검사는 “부탁받은 적 없다”

공기업 이사를 겸하고 있는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형사사건을 수임하며 성공보수 명목으로 2000만원을 차명 계좌로 수수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법원은 2015년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받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변호사가 검찰 간부에게 의뢰인의 살인미수 혐의를 특수상해 혐의로 바꿔 달라고 청탁을 시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근 A변호사에 대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접수했다. A변호사는 지난해 3월 B씨가 연루된 형사사건을 수임했다. 미국에 살던 B씨는 지난해 3월 귀국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하던 여성 2명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평소 조현병(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B씨는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A변호사는 이 사건을 수임하면서 B씨 가족 C씨에게서 착수금으로 2000만원을 받았다. 이 중 500만원만 법무법인 계좌로 송금받고 1500만원은 지인 명의 차명 계좌로 받았다. 수임료를 차명 계좌로 받는 행위는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차명 계좌로 돈을 받는 건 100% 탈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만약 법무법인의 다른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몰랐다면 업무상 배임‧횡령죄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변호사는 착수금 2000만원을 받은 며칠 뒤 성공보수 명목으로 2000만원을 더 차명 계좌로 송금받았다. 하지만 C씨는 2000만원을 송금한 경위에 대해 “A변호사가 자기와 친한 검찰 및 교정시설 간부 이름을 대며 로비 명목으로 필요하다고 해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변호사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로비한다고 되지도 않는(아무 소용없는) 요즘 세상에 그게 말이 되느냐”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어찌됐든 A변호사는 총 3500만원을 차명계좌로 빼돌린 셈이다. 더욱이 형사사건에서 변호사들이 성공보수를 받는 것은 위법행위로 간주된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받는 것이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명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 ‘성공’이라는 의미는 수사단계에서는 불기소, 재판단계에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 등을 의미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형사 절차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성공’을 대가로 돈을 주고받기로 했다면 형사사법 절차의 공정성 등을 침해해 선량한 사회 풍속이나 건전한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성공보수라는 건 ‘조건부’인 건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미리 받아가는 건 갑질이자 착취”라며 “변호사 윤리 위반으로 징계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A변호사가 잘 아는 검찰 간부에게 B씨의 살인미수 혐의를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특수상해 혐의로 바꿔 달라고 청탁한 정황도 드러났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수사 검사가 B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하자 C씨는 “변호사님이 ‘여기 검사님이 알아서 잘 해준다’고 했잖아요. B가 심신미약 상태였는데 어떻게 30년을 구형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A변호사는 “나도 지금 멘붕이고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며 “살인미수를 좀 바꿔 달라고 부탁했는데 (부하인) 수사검사가 말도 안 듣고 제 맘대로 구형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A변호사는 “(의뢰인의 상황이) 너무 딱하니까 ‘도와줄 수 있냐’ 부탁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성공보수를 받는 게 잘못이라면 그 부분은 돌려드리겠다”며 “2000만원을 돌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B씨 측이) 요구를 안 했다”고 했다. 검찰 간부는 A변호사와 아는 사이라고 하면서도 “A 변호사로부터 사건 관련해서 민원 부탁을 들은 적이 한번도 없다”며 “사건을 담당한 검찰청에서는 사건 발생 시점에 근무를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시스

한편 B씨 측은 1심 선고 전 A변호사를 해임했고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희진·이창훈·이지안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