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 한국의 매운 맛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적인 위스키’를 만들 계획입니다.”
경기 남양주 화도읍의 한 언덕배기에는 샌드위치 판넬로 만든 3층 높이의 건물이 한 채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 국내 생산 위스키를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는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증류소로, 이 건물로 들어서면 거대한 황동색 증류기 2개가 먼저 맞이한다. 좌우 완벽한 대칭을 이룬 이 증류기에서 한국산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왼쪽 증류기는 발효된 맥즙을 알코올 25도로 1차 증류하고, 오른쪽 증류기는 1차 증류한 원주를 다시 74도 정도로 높인다. 알코올 함량이 올라간 원주는 이후 배관을 타고 오른쪽 아래에 있는 위스키 숙성 저장고로 옮겨진다.
쓰리소사이어티스 관계자는 “2차 증류 때 원주의 알코올 도수가 74도에 도달하기 전에 나오는 초류는 따로 빼내고, 74도에 도달한 뒤 70도까지 떨어질 때 나오는 본류만 사용한다”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원주의 30%가량만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로 빼내 초류는 후류(증류 후반에 나오는 원주)과 일정 비율로 섞은 뒤 다시 증류, 앞선 과정과 마찬가지로 본류만 사용한다.
원주가 증류기를 거치기 전에는 2가지 과정을 거친다. 우선 맥아를 분쇄, 당화, 발효시키는 과정이 먼저 이뤄진다. 당화 과정은 증류기 오른쪽에 있는 당화조에서 진행된다. 분쇄된 맥아를 뜨거운 물과 섞고 불려 당을 가진 맥아즙으로 만들게 한다. 마치 밥과 엿기름, 물을 넣고 따뜻하게 해서 식혜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아즙은 증류기 왼쪽에 있는 발효조로 이동, 이곳에서 효모가 첨가돼 72시간 보관된다. 이렇게 맥아즙 속의 당과 효모가 만나 알코올을 만들고, 7~9도의 알코올 가진 발효액은 이후 증류기에서 2번의 증류를 거쳐 위스키가 될 준비를 마친다
증류된 원주는 저장고로 이동한다. 이 건물 또한 샌드위치 판넬로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30여개의 오크통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오크통 안에는 위스키 원주가 보관 중인데, 증류기에서 나올 당시와 달리 알코올 도수는 59.9도 낮았다. 국내 위험물안전관리법 때문인데, 60도 이상 알코올 액체는 위험물로 지정돼 현재 오크통처럼 쌓아서 보관할 수 없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지난해 6월부터 증류를 시작했다. 위스키 원주는 세 종류 오크통에 담긴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오크통(아메리칸 오크), 미국 버번위스키를 숙성시킨 중고 오크통, 그리고 스페인 쉐리(주정강화 와인)를 숙성시킨 중고 오크통이다. 당연히 제일 비싼 오크통은 쉐리 오크통으로, 버번 오크통보다 네 배가량 비싸다.
방문한 저장고에는 6월부터 원주를 생산한 것치고는 다소 적은 숫자의 오크통이 있었다. 쓰리소사이어티스 관계자는 “이곳에는 의미가 있는 일부 오크통만 보관하고 있다”며 “별도의 저장고에 600여개가 더 쌓여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주를 100번째로 채운 오크통의 원주를 조금 꺼내 시음을 하게 해줬다. 이때 나무망치로 오크통 상부를 힘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오크통 상부에 있던 나무 마개가 빠졌으며, 그곳을 통해 원주 일부를 따라줬다. 원주는 숙성한 지 7~8개월 가량 밖에 안 됐지만, 이미 전형적인 위스키 색인 호박색을 띠었다. 다만 맛은 거칠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먹을만했다. 아니 기존 위스키와 조금 다른 맛도 느껴졌다.
“저희가 만드는 한국 위스키는 한국의 대중적인 음식처럼 약간의 매운맛과 단맛이 느껴지게 조절 중입니다. 40년 경력의 앤드류 샌드(Andrew Shand) 디스틸러(위스키 증류 전문가)가 저희와 함께 제대로 된 위스키를 만들고 있죠.”
쓰리소사이어티스에 따르면 맥아 2톤을 사용하면 최종적으로 위스키가 될 원주는 1000ℓ밖에 안 나온다, 1/20 수준으로,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위스키를 만드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1년 365일 위스키 제조에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최초 한국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타이틀을 위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순국산 위스키는 없는 것일까? 주류문화칼럼니스트이자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교수인 명욱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류 대기업을 포함해 위스키를 직접 생산하는 회사는 없다. 1980년대 두산 등에서 위스키를 증류, 제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수입산보다 높은 비용과 외국산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인식 등으로 중단했다. 이후 스코틀랜드 원주를 수입,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블랜딩해서 출시한 제품이 국내 위스키 시장을 휩쓸었다. 반면 쓰리소사이어티스는 몰팅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하기 때문에 국내 유일이면서 부활한 한국 위스키라고 할 수 있다.
명욱 교수는 “가까운 일본 및 대만만 해도 자국산 위스키 산업이 주류 시장의 헤게모니를 이끌고 있다”며 “한류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코리안 위스키(Korean Whisky)’란 이름으로 색다른 모습으로 알려진다면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미가 있는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위스키이지만 리스크(변동성, 위험 등)도 적지 않다. 바로 숙성 기간이다. 통상의 위스키는 오크통에 오래 보관할수록 맛이 짙어진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인 ‘발렌타인’은 12년보다 17년, 21년, 30년이 더욱 맛이 깊고 부드럽다. 오랜 기간 오크통에 있으면서 기온의 변화에 따라 오크통이 수축과 팽창을 거치며 숙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보관 및 숙성한 지 1년 된 쓰리소사이어티스 위스키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쓰리소사이어티스 관계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위스키를 오크통에 오래 보관하는 이유는 오크통의 변화를 겪으라는 겁니다. 나무인 오크통은 여름에 팽창해 위스키 원주를 빨아들이고, 겨울에 줄어들어 원주를 뱉습니다. 즉 기온 차이를 이용해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것이죠.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오크통 변화가 큽니다. 그러다보니 통상 대표적인 스코틀랜드의 위스키보다 숙성이 빨리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을 오크통에 숙성해도 좀 더 긴 숙성도의 위스키와 비슷한 맛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3~4년 정도만 숙성해도 8~10년 정도 숙성한 통상의 위스키와 비슷한 맛과 질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명욱 교수도 “대만의 카발란 위스키가 유사한 방식으로 제조 및 숙성을 진행하고 있다”며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기존의 스카치 위스키와 다른 한국만의 맛과 멋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이르면 올 하반기 첫 위스키 상품을 출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1년 숙성 위스키인데, 제품으로 나올 때는 별도의 숙성 기간을 표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숙성 기간보다 맛과 품질을 강조하는 쪽으로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위스키와 별도로 진도 생산 중이다. ‘정원’으로 이미 지난 1월에 출시한 제품으로, 업계는 물론이고 마니아 사이에서 평이 좋다. 정원 또한 한국인 입맛에 맞게 생산됐다. 정원에는 진의 고유한 특징을 만드는 주니퍼베리, 고수 씨앗, 계피, 카다멈을 비롯해 라벤더, 오렌지와 레몬 껍질 등이 포함됐다. 게다가 한국적인 개성을 나타내 줄 초피나무 열매, 새싹 삼, 깻잎, 증류소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는 솔잎이 사용됐다.
쓰리소사이어티스 관계자는 “현재 수출되고 있는 싱가포르, 홍콩 뿐 아니라 미국,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한국 진 ‘정원’의 이름을 알릴 예정”이라며 “‘정원’이라는 이름 답게 한국의 다양한 식물들을 활용한 한정판들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