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씨는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가정불화에 실업까지 겪어야 했다. 교회에 다니다 감염됐다는 그는, 주변에서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더 아팠다고 했다. B씨는 “11년 일하던 직장에서 꼬투리를 잡고, 잔소리를 심하게 해 관뒀다”며 “남편과 시댁도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는 확진자든 비확진자든 심신의 건강이나 경제활동 등 다방면에 큰 상처를 남긴다. 확진자들은 신체적 후유증을 겪는 것은 물론, 직간접적인 눈총에 시달리거나 실업 등 경제적 타격도 입는다. 이를 지켜보는 비확진자들도 혹시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산다. 사회 전반에 ‘코로나 우울’이 번지는 이유다. 우울한 분위기를 해소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코로나19 확진 후 후유증·실업 고통
21일 국립중앙의료원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회복 환자 40명의 후유증을 조사한 결과 피로감(43%)과 운동 시 호흡곤란(35%), 탈모(23%), 가슴 답답함(15%), 두통(10%) 등을 호소했다. 정신과적 후유증으로는 우울감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이 나타났다.
C씨도 코로나19에서 완치했지만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 중 하나다. 일단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 물리치료를 받고 있고, 아직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코로나19로 남편을 잃은 슬픔은 그를 더욱 괴롭힌다. C씨는 “남편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며 “당시만 생각하면 안타깝고, 원망스럽고 그렇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해고되기도 한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확진 이후 직장가입 상실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2월 1일부터 9월 23일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진료비 승인을 받은 2만3584명 중 직장보험 가입자(6635명)의 19.7%인 1304명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임원인 D씨는 “임원이 코로나19에 걸리면 방역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줘 곧바로 집에 가야 할 수 있기에 더 많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손 잘 씻고, 체온 자주 측정하고, 꼭 KF94 마스크를 쓰는 등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우울’ 확산…마음건강 돌봐야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피해가 크다 보니,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두려움에 시달린다.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건강은 악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조사한 ‘코로나19로 인한 정신건강실태’를 보면 지난해 3월 조사에서 5.1점(27점 만점)이던 우울 점수는 5월 5.12점, 9월 5.86점, 12월 5.52점으로 높아졌다. 2018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 나타난 우울 점수 2.34점보다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우울감으로 인해 피로 0.99점, 흥미와 즐거움 없음 0.87점, 수면문제 0.83점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10점 이상일 때 분류되는 우울 위험군도 5월 18.57%, 9월 22.1%, 12월 19.97%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응답자 중 자살 생각을 했다는 비율은 3월 9.66%에서 12월 13.43%로 급증했다. 특히 활동이 많은 19∼29세 연령에서 상승폭이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장이 코로나19 감염 이력을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재택근무, 연차사용, 퇴사 등을 강요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정부는 근로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
심리 지원도 있어야 한다. 정부는 전국 권역별로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해 심리 치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후유증은 선진국 사례와 후유증·격리해제 후 치료비 지원대상 및 규모, 재정 영향, 다른 감염병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지원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 우울’ 극복을 위해서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코로나19가 준 선물이 있다면 시간”이라며 “쓸데없는 모임이나 회식으로 낭비했던 시간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좋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들을 지금 해보라”고 권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었거나 외식업, 여행업 종사자들 주변에 힘든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지원요청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英, 완치 후에도 ‘후유증 클리닉’서 치료·재활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감염병은 완치자들에게도 신체·정신적 후유증,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 때문에 해외 주요국들은 지역사회 등과 연계한 사후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전세 역전에 성공한 영국이 비교적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병원을 퇴원한 뒤 집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돕고 있다.
영국 보건부는 지난해 8월 재가 서비스가 필요한 퇴원자들을 위해 5억8800만파운드(약 9152억원)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격인 국민보건서비스(NHS) 심사를 거쳐 최장 6주간 관련 비용을 지원한다. 전체 퇴원자 45%가 지원 대상이다. 나머지 절반은 자원봉사자와 지역사회 도움을 받아 회복할 수 있게 한다.
영국 NHS는 ‘롱 코비드’(Long Covid)로 불리는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웹사이트엔 장기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찾아갈 수 있는 영국 전역의 클리닉 69곳 목록을 정리해놨다. 이 클리닉에선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의 신체·정신 평가를 기반으로 한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미국도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 클리닉이 설치돼 있다. 특히 확진자나 완치자를 위한 풀뿌리 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점을 주목할 만하다. 생존자 군단(Survivor Corps), 보디 폴리틱(Body Politi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에 걸려 힘들었던 점이나 코로나19를 이겨낸 경험 등을 공유하고, 온라인으로 국제적 연대도 도모한다. 영국에도 코로나19 후유증을 겪는 당사자들이 만든 롱 코비드 서포트(Long Covid Support)란 단체가 있다.
인구대국 인도는 지난해 9월 마련한 ‘포스트 코로나19 관리 프로토콜’에 따라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퇴원 뒤 7일 이내에 반드시 병원을 찾거나 전화 상담을 받아야 한다.
캐나다는 코로나19 완치자뿐 아니라 사태 장기화에 따른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 전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웰니스(Wellness, 웰빙·행복·건강 합성어) 투게더 캐나다’란 포털사이트를 통해 자가 진단, 온라인 코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4시간 동안 매일 전문 상담사와 전화나 문자 무료 상담이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후유증이 전 세계 보건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퇴원자나 급성 증상이 호전된 사람들의 임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중이다. WHO의 재닛 디아즈 박사는 지난 2월 “롱 코비드로도 불리는 포스트 코로나19 증상은 급성 증상이 있은 뒤 한 달, 심지어는 6개월 뒤에 나타날 수 있다”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경·정필재·박유빈·박진영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