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국산 경항모는 핵추진 체계를 탑재하지 않는다 [박수찬의 軍]

한국 해군 경항공모함과 호위함, 초계기 등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해군 제공

‘별도의 연료 보급 없이 필요한 만큼 항해하는 함정을 만든다.’ 냉전 시절 치열한 군비경쟁을 펼친 미국과 옛 소련은 바다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항해 거리가 무한대인 군함을 만들려 했다. 그 결과 핵추진 순양함과 항공모함 등이 잇따라 등장,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프랑스, 중국 등 일부 강대국들은 핵추진 항모를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인도는 ‘아리한트’라는 핵추진잠수함을 개발했다. 무제한의 동력을 제공하는 핵추진 체계의 장점에 주목했다는 평가다.

 

2033년 전력화를 목표로 추진중인 해군 경항모 건조 사업을 놓고도 프랑스 샤를 드골 항모나 중국이 만드는 신형 항모처럼 핵추진체계를 탑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강대국의 전유물인 핵추진 항모를 만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군의 선택은 재래식 추진체계였다. 해군 관계자는 21일 “(경항모) 사업 일정과 여건 고려해서 추진방식은 재래식으로 정했다. 대신 충분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래식 추진체계는 불가피…핵추진은 난관 많아

 

핵추진체계는 원자로 안에서 일어나는 핵분열에 의해 발생한 열에너지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다. 

 

핵연료는 자연 상태의 우라늄 U-235를 20~90%로 농축해서 사용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은 농축률이 40%, 버지아니급 잠수함은 90%에 달한다. 농축 수준이 높으면 연료 교환을 할 필요가 줄어든다. 핵연료 교체에 따른 작전 공백 우려도 감소한다.

 

미 해군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이 항해를 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원자로를 이용해 충분한 양의 전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미 해군의 최신 핵항모 제럴드 포드호에 탑재된 A1B 원자로는 1기당 전기출력이 300MW, 전체 출력은 600MW에 달한다. 

 

기존 캐터펄트보다 성능은 높고 운영유지는 쉬운 전자기식 사출장치(EMALS)와 무인기 이착함도 가능한 최신형 강제착륙장치(AAG), 장거리 레이더 운영이 가능한 이유다.

 

전력 소모가 많은 레이저 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 원자로가 항모 전투력 향상을 위한 옵션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프랑스가 2038년을 목표로 차세대 핵항모 건조에 나선 것도 이같은 장점에 주목한 결과다.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발표한 차세대 핵항모 건조 사업 ‘PANG 계획’에는 기존 라팔 전투기를 이을 6세대 스텔스 전투기와 무인기, 신개념 이착륙 체계와 안전하면서 작고 출력이 강한 핵추진체계 확보가 포함됐다. 

 

미 해군 핵항모 제럴드 포드호가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현재 개발 중인 K-22 핵추진체계는 2대가 탑재되는데 440MW의 출력을 낸다. 제럴드 포드호와 맞먹는 수준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한국 경항모는 핵추진체계를 갖추기가 어렵다. 3만t급 경항모에 원자로와 동력체계를 탑재하려면 프랑스 샤를 드골 핵항모 원자로, 동력체계보다 작아야 한다. 

 

핵추진체계를 함정에 탑재한 경험이 없다면 외국과 공동개발을 해야 하는데, 함정용 원자로 기술을 지원해줄 나라는 없다. 작고 안전하면서 출력이 강한 핵추진체계 독자 개발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2033년 경항모 전력화’ 목표 달성이 어렵다.

 

핵연료 조달도 난제다. 농축률을 최대 90%로 끌어올려 군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핵확산 방지 문제와 저촉될 수 있다.

 

프랑스의 차세대 핵항모 상상도. 샤를 드골호보다 성능이 향상된 원자로가 탑재된다. 프랑스 정부 제공

기술적 난이도도 문제다. 국내 최초로 만드는 경항모는 건조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핵추진체계가 더해지면, 난이도는 급상승한다.

 

항모 건조 경험이 있는 프랑스도 핵항모 샤를 드골호 건조 당시 많은 문제를 겪었다. 시운전을 했을 때 최대속력이 25노트에 불과해 엔진과 추진축을 대대적으로 보강했다. E-2 조기경보통제기 운용을 위해 비행갑판을 확장하고, 소음 감소를 위한 대책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2033년까지 전력화를 해야 하는 한국 해군 입장에서는 기술적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낮춰야 하는 입장이다. 핵추진체계 대신 검증된 재래식 추진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GE가 개발한 LM2500 가스터빈 엔진. 한국 해군도 사용중이다. GE 제공

◆어떤 추진방식이 적용될까

 

재래식 동력을 사용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증기터빈 △가스터빈 또는 디젤 △하이브리드가 있다.

 

중국 랴오닝호와 러시아 쿠즈네초프호에서 쓰는 증기터빈은 오래된 방식이라 한국 경항모에는 맞지 않는다. 가스터빈은 이탈리아 경항모 카보우르호에서, 하이브리드는 미국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호에서 쓰인다.

 

한국 해군은 과거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LM2500 가스터빈을 많이 사용했다. GE 가스터빈 엔진 중에는 베스트셀러 모델이다. 세계 33개국 해군에서 1300대가 넘는 LM2500이 쓰이고 있다. 민간에서는 초대형 크루즈나 초고속 페리에서 이 엔진을 사용한다. 1970년대 등장했지만, 개량을 거듭하면서 출력을 높이고 연료소비는 줄였다는 평가다.

 

한국 해군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과 광개토대왕급,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등에서 쓰인다. 

 

영국 롤스로이스의 MT-30 엔진. 미국과 영국, 한국에서 쓰이고 있다. 롤스로이스 제공

최근에는 영국 롤스로이스 MT-30 가스터빈이 사용되는 추세다. 롤스로이스는 해군 대구급 호위함에 첨단 하이브리드 추진 시스템을 탑재했다. 각 함정은 4대의 롤스로이스 MTU 디젤 발전기로 구동되는 전기 추진 모터와 단일 MT-30 가스터빈으로 동력을 제공한다. 

 

평소에는 소음이 작은 추진전동기(전기모터)를 쓰다가 고속항해 시에는 가스터빈 엔진으로 전환해 빠르게 항해할 수 있다. 소음 수준이 낮아 잠수함이 탐지하기 어렵다.

 

‘미니 이지스’로 불리는 한국형차기구축함(KDDX)에는 전기차처럼 전기로만 동력을 발생시키는 통합전기추진체계 탑재가 거론된다.

 

해군은 경항모에 쓸 전력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추진체계를 고려하는 모양새다.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를 다수 탑재해 전력 소비량이 적지 않다. 

 

무인기를 비행갑판에서 사출하게 되면, 전자기식 사출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레이저 무기, 레일건 등 미래 첨단 무기를 추가로 운용하려면 충분한 전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반영될 ‘스마트 해군(SMART Navy) 비전 2045’를 경항모에서 구현해 승조원 규모를 줄이는데도 전력이 필요하다. 가능한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추진체계가 한국 해군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공간 효율성도 변수다. 좁은 함정 안에 추진체계를 설치하려면 제한된 넓이의 공간에서도 제 성능을 내면서 소음은 낮추는 기술이 필수다. 이는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견고하게 위치를 잡고 충격을 차단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해군 경항공모함이 이동중인 모습을 그린 상상도. 현대중공업 제공

낮은 소음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다. 유사시 경항모는 적 잠수함의 집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은 영국 해군 경항모 인빈시블을 집요하게 노렸다.

 

해상작전헬기와 구축함 등이 있지만, 빠른 속도와 낮은 소음 수준을 통해 경항모 스스로 적 잠수함을 따돌릴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경항모에 탑재될 세부 추진체계가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해군 관계자는 구체적인 재래식 추진방식에 대해 “가스터빈이 기본적이지만, 이지스함처럼 가스터빈만 할지, 하이브리드를 적용할 것인지 등은 고민 중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며 “탑재될 무기체계 등을 고려해서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