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신고가 정말 원래 이런 건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번 상처 받고 근로감독관에게 또 한 번 상처 받는 상황입니다.”
직장인 A씨는 지난해 10월 회사 대표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괴롭힘에 맞서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가 근로감독관의 무성의한 업무 처리로 더 큰 고통을 겪었다. 당시 대표는 A씨에게 가족여행 비행기 티켓 발권, 자녀 휴대전화 개통 등 사적인 용무까지 처리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자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육아휴직과 연차 사용을 받아주지 않는 등 괴롭힘을 자행했다. 참다못한 A씨는 고용부에 신고했다. 근로감독관이 파견됐지만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바뀌면서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해졌다.
그러는 사이 회사는 오히려 A씨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A씨는 근로기준법 76조 3항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로 고용부에 2차 진정을 냈다. 대질조사가 진행된 건 5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더욱이 ‘갑’인 대표와 그의 배우자를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근로감독관은 A씨를 보호하기보다 합의만 종용했다. 첫 신고 후 5개월이 지나도록 해결은커녕 A씨의 상처만 깊어진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부에 신고해도 근로감독관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두 번 운다는 직장인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5일 근로감독관 갑질 제보 중 일부 사례를 공개했다. 이 단체에 1∼3월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637건 중 근로감독관 관련 제보는 72건으로 전체의 11.3%를 차지했다. 제보 유형으로는 △회사 편들기 △신고 취하 및 합의 종용 △무성의·무시 △시간 끌기 등이 있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도 근로감독관의 ‘회사 편들기’로 고통 받은 경험이 있다. 일용직으로 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해고당한 B씨는 퇴직금을 포함해 1000만원이 넘는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통상임금보다 적은 평균임금으로 퇴직금을 계산하라고 하는 등 체불임금을 줄이려 했다.
사측과의 삼자대면에서도 B씨가 청구한 금액이 너무 많다고 힐난하며 도리어 사측을 걱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B씨는 “근로감독관이 말끝마다 청구한 게 너무 많다며 나무라듯 말해 오히려 내가 죄지은 사람이 된 듯했다”며 “근로감독관이 아니라 임금체불을 깎아내는 ‘임금체불 조정관’이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근로감독관이 노동자가 아닌 사측을 편들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무성의하게 대처하는 현실과 관련해 직장갑질119는 “고용부 근로감독관들이 사장과 직원이 대등하다는 착각으로 사장의 갑질과 불법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감독관들이 바뀌지 않으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 시행도 아무 소용이 없다”며 “근로감독을 불시감독으로 전환하고 근로감독청원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고양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전은주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피해노동자가 괴롭힘 행위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이므로 조사과정에서 전문성과 공감능력이 특히나 더 요구됨에도 피해노동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고용부는 소속 근로감독관에 대한 교육과 업무 처리 감독을 철저히 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