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비상장 주식보다 더 무서운 '비상장 가상화폐'

가상화폐에 투자하던 A(30)씨는 카카오톡 채팅방 등지에서 한 가상화폐가 빗썸 등 거대 거래소에 곧 상장되니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A씨가 투자 권유를 받은 B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한 곳에 상장돼 있고 앞으로 빗썸이나 업비트 등 규모가 큰 거래소에도 상장될 것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다른 익명의 권유자는 180원∼220원에 해당 가상화폐를 사라며 매수구간도 정해줬고, 특정 시세 이하에는 매도 금지 명령까지 내렸다. 아울러 보안 유지와 단속을 위해 투자에 참여하려면 자신의 신분증을 사진찍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큰 돈의 유혹에 A씨는 덜컥 가상화폐 상장 리딩방 지시에 따라 투자를 했다가 B코인이 한 때 30원까지 급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A씨는 “(리딩방에서) 정해준 가상화폐가 상장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온라인 상에 어떻게 댓글을 작성할지도 구체적으로 지시한다”며 “하지만 투자자가 손실을 입어도 책임은 커녕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기에 이렇게 제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2일 가상화폐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가상화폐 정보를 공유하는 ‘리딩방’을 중심으로 비상장 가상화폐를 둘러싼 가짜뉴스가 판을 치면서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비상장 가상화폐란 비상장 주식과 같이 발행처로부터 출시는 됐지만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가상화폐다. 규모가 작은 거래소에 상장됐지만, 빗썸이나 업비트 등 대형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가상화폐도 비상장 가상화폐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같은 비상장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클 뿐더러 대형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기업과 재무제표가 있는 비상장 주식과 다르게 비상장 가상화폐는 목적도 출처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위험성이 더 크다.

위에 언급한 B코인이 대표적이다. 이 가상화폐는 한 스타트업이 발행한 가상화폐로, 문화 콘텐츠 구독과 공유를 기반으로 각종 문화사업에 쓰일 수 있다고 홍보되고 있다.

 

중소형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된 이 가상화폐는 온라인 등지에서 최근 대형 거래소 상장을 미끼로 투자자가 몰렸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70원대였던 이 가상화폐는 불과 일주일만에 5배 이상 급등했다가, 이후 급락해 다시 80원대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비상장 가상화폐 범람은 전 세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송금 수수료를 받지 않는 목적으로 출범됐다는 C코인 역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곧 상장될 것이라고 홍보하며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지만, 정작 이 가상화폐는 최근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장 가상화폐는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2월 17일에 ‘매일 4% 수익을 안겨주겠다’는 ‘얼랏코인’이 발행돼 국내 소형 거래소에 상장됐다. 이 가상화폐는 다른 거래소에도 상장될 것이라고 홍보하며, 시세가 말 그대로 매일 4%씩 상승하며 두달 동안 수십배 뛰었다. 하지만 3월 초 투자금을 터는 행위인 ‘설거지’ 시간이 도래하자마자 한 시간 만에 99% 폭락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조차 상장을 예고하며 현재 상장된 거래소 내 시세를 부풀리거나, 투자금을 요구하는 것은 사기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업비트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업비트 상장 사기 제보 채널’에 61건의 제보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중 80% 이상은 ‘거짓 상장 정보로 투자 유인 후 연락두절’ 사례였다. ‘업비트 직원을 사칭해 상장 제안 및 상장비 요구’, ‘상장 프로젝트의 공시 전 정보 유출’ 등도 있었다.

 

업비트 관계자는 “상장이 확정된 경우 이를 공지사항으로 고지한다”며 “위의 유형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오프라인이나 이메일, 오픈채팅방, SNS로 접했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