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변호사는 최근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에 무료로 가입해 유료 광고 서비스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그는 플랫폼에서 다양한 의뢰인을 만나면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2일 “지인을 통하지 않고도 법률 상담과 사건을 수임할 수 있다”며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의뢰인을 만나는 시대가 왔다”고 만족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법률 서비스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그간 온라인에 강점을 뒀던 국내 정보기술(IT)들이 법률 시장과 결합하면서 비대면 법률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걸테크’ 시장에서 제도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이유로 규제가 잇따르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걸테크는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결합으로 새로운 유형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리걸테크 영역은 크게 △변호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검색 서비스 △판결문 및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법률 문서 자동 작성 서비스 △행정업무 지원 솔루션과 같이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합리적인 법률 서비스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소송 결과 예측 등 법적 견해를 제공하는 서비스 등이다.
이 같은 리걸테크 분야가 급성장한 데는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급증하면서 법률서비스의 높이가 낮아지길 바랐던 정부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법률서비스는 국민들에게 멀고도 어려운 분야다. 실제로 2019년 로앤컴퍼니가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는 변호사’를 묻는 질문에 전체 73%가 ‘전혀 없다’, 21%가 ‘1명 있다’, 4.9%가 ‘2명 있다’로 답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5년부터 2020년 6월) 민사 본안 소송 529만건 중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한 경우가 전체 72.6%에 달한다. 원고와 피고 중 한쪽만이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93.1%로 높아진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의 문제는 IT를 활용해 법률 공급자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함으로써 해소가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리걸테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리걸테크 투자 규모는 2016년 2억달러에서 2019년 11억달러 수준으로 연평균 81%의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에는 30여개 기업이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를 소개하는 플랫폼과 법령·판례 등 법률정보 검색서비스, 셀프 법률업무를 돕는 서비스, 간편 전자서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베링랩이 네이버 기업형 액셀러레이터 D2SF(D2스타트업팩토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베링랩은 법률과 특허 분야에 특화된 AI 번역 엔진을 개발 중이다. 법률 분야 전문용어와 문서 특성을 반영해 번역 품질을 일관되게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베링랩은 약 4800만건에 이르는 법률·특허 문서를 학습데이터로 활용하고 변호사의 데이터 정제 과정을 거쳐 엔진을 고도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앤컴퍼니의 로톡은 이러한 법률 서비스를 플랫폼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현재 로톡에는 개업 변호사의 15.9%가 가입돼 있다. 법률 상담은 온라인 상담, 15분 전화상담, 30분 방문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5월 초에는 자체 개발을 통해 영상상담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로톡 ‘형량 예측 서비스’는 AI 기술을 활용해 형사 사건의 처벌 수위를 가늠하는 서비스다. 약 40만건의 1심 형사 판결문을 AI 기술로 분석한 통계 데이터를 만들고 통계정보를 보여준다. 월평균 법률상담은 약 2만3000건이며, 가입 변호사 수는 전국 4000여명이다.
무엇보다 로톡은 지금까지 공급자인 변호사 중심의 시장을 고객 중심의 시장으로 개편했다. 대면으로 진행됐던 대부분의 상담을 모바일을 통해 간소화하면서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췄다.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앞으로도 로앤컴퍼니는 IT 연구를 통해 국민과 법조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에 대한 걱정을 덜고, 국민들은 질 좋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의 폐쇄성과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 부족으로 산업에 제동이 걸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로앤컴퍼니의 로톡은 직역수호변호사단으로부터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 현재 사건을 경찰에서 수사 중이다. 이미 검찰에서 2차례나 무혐의가 나온 사안이지만 변호사단체들은 소속 변호사들에게 로톡을 가입할 경우 징계를 가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히며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대한변협 측은 “비변호사는 법률 사무를 할 수 없다”며 “로톡의 변호사 광고와 형량예측 서비스는 변호사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로톡 형량 예측 서비스는 범죄별 형량에 대한 통계정보로 이 과정에서 로앤컴퍼니가 주관적으로 개입하거나 정보를 가공하지 않으며, 법률적 조언은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라는 안내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피해는 리걸테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선도국의 리걸테크 투자 규모는 2016년에 비해 2019년 6배가량 증가했지만, 우리나라 리걸테크 투자 규모는 2015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누적 투자 규모가 1200만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