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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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반도체를 사면하라

국운 걸린 전쟁에 승리하려면
훌륭한 장수 존재는 필수 요건
진영 논리 넘어 국익 관점에서
이재용 석방 조속히 결단 내리길

# 1597년 봄 전쟁 중에 이순신 장군은 서울로 압송됐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쫓겨나 억울하게 옥에 갇혔다. 조선 왕 선조는 고문으로 초주검이 된 장군에게 소리쳤다. “조정을 기망하고, 임금을 무시하고, 적을 놓아주고, 나라를 저버리고, 남의 공을 가로채고, 모함까지 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

# 2021년 봄 미국과 중국 간에 반도체 전쟁이 터졌다. 그 중심에 반도체 1등 삼성전자가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삼성전자 CEO를 백악관으로 불러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요청했다. 중국도 파격적인 혜택을 줄 테니 시안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라고 삼성을 압박한다. 전쟁의 불길은 유럽연합(EU), 일본, 대만까지 합세하면서 전 세계로 번진 상태다. 우리의 경제·외교·안보가 걸린 전시 상황에서 반도체 사령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옥중에 있다.

배연국 논설위원

감히 이순신 장군을 이 부회장에 견줄 의도는 없다. 비교의 방점은 국가지도자인 선조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쟁에서 지도자가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당시 이순신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선조의 서슬에 놀라 누구도 구명에 나서지 않았다. 그때 노대신 정탁이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렸다. 1298자의 신구차(伸救箚) 상소문이다. “앞으로 더 큰 공을 세울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간의 사정을 살피지도 않은 채 끝내 큰 벌을 내린다면 공 있는 자와 능력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라를 위해 더 이상 애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정탁이 앞세운 것은 국익이었다. 이순신이 어떤 잘못을 했느냐가 아니라 나라에 어떤 보탬이 되느냐였다. 과거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순신의 활동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명량과 노량에서 연거푸 대승을 거두고 나라를 구했다.

선조의 입장에서 이순신을 죽일 이유는 백 가지도 넘었다. 그는 왕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왜적에 쫓겨 나라 끝까지 도망친 선조와는 달리 목숨을 다해 나라를 지켰다.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수였고 백성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이었다. 명나라 황제가 값진 선물과 정1품 벼슬을 내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왕조시대에는 왕보다 민심을 많이 얻는다는 것 자체가 반역이다. 용렬한 선조도 결국 국익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주목해 석방을 결정했다. 이것이 선조가 나라를 망친 암군(暗君)의 오명을 벗은 이유일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는 물론 죄가 있다. 정경유착과 승계 과정의 허물이 가볍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거기엔 그에게 외압을 가한 권력의 원죄가 더 무거울 것이다. 그의 사면을 유전무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국익의 가치는 사면을 반대하는 그 모든 이유를 초월한다.

이 부회장의 사면을 개인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국익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시류에 따라 변하는 국민 공감대가 국익을 앞설 순 없다. 미·중이 앞다퉈 삼성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자국의 이익 때문이다. 사면의 지향점은 ‘반도체=국익’이다. 사면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주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국가적 결단이다. 그렇다면 이재용 사면이 아니라 ‘반도체 사면’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 없이도 삼성 경영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사면에 어깃장을 놓는다. 어불성설이다. 장수 없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궤변이나 다름없다. 이순신을 발탁한 서애 류성룡은 훌륭한 장수와 훈련된 군사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으로 임란 전시내각을 이끌었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삼성전자라는 최고의 반도체 군대가 있다. 그러나 장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국익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치 득실을 저울질하다 세계 1위의 반도체 산업을 잃는 암군의 길은 걷지 말아야 한다. 벌써 수많은 충신 ‘정탁’이 일어섰다. 경제 5단체를 비롯해 종교계, 사회단체까지 사면의 북을 울리고 있다. 과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봐야 한다. 진영의 언덕을 넘어야 국익의 산이 보인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