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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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웅이 된 ‘언성 히어로’… 첼시, 캉테 대활약 속 9년만에 UCL 결승행

은골로 캉테. AP연합뉴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선수를 스포츠에서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숨겨진 영웅)'라고 부른다. 은골로 캉테(30)는 유럽축구에서 언성 히어로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선수 중 하나다. 오랫동안 무명 선수였던 그는 '동화'로 불렸던 2015~2016시즌 레스터시티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듬해 첼시로 이적해 소속팀의 리그 우승에 또 한번 공헌했다.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 상 활약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성과가 워낙 뛰어나 이제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수로 올라섰다.

 

이런 캉테가 ‘꿈의 제전’ 한복판에서 ‘숨겨진 영웅’이 아닌 진정한 영웅으로 등극했다. 첼시는  6일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2020~2021 UCL 준결승 2차전에서 티모 베르너와 메이슨 마운트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완승했다. 앞선 원정 1차전에서 1-1로 비겼던 첼시는 이날 승리로 1,2차전 합계 3-1로 결승 진출권을 따냈다.

 

득점은 공격수들이 터뜨렸지만 이날 가장 각광받은 선수는 단연 미드필더인 캉테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토니 크로스, 카세미루, 루카 모드리치 등 ‘크카모 트리오’를 압도한 덕분이다. 세 선수는 지난 2015∼2016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UCL 3연패를 이끈 핵심 라인으로 카림 벤제마를 제외한 공격진이 부상으로 붕괴한 상황에서도 뛰어난 능력으로 팀을 UCL 4강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4강 두 경기에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캉테에게 지워졌다.

 

여기에 캉테는 이날 공격에서도 완벽했다. 안정된 볼 배급의 중심으로 첼시의 빠른 역습에서 기점 역할을 해낸 것. 특히, 선제골 장면에서 그의 재치가 빛났다. 무서운 스피드로 상대의 중원을 뚫어낸 뒤 베르너와 패스를 주고받다 카이 하베르츠에게 패스를 했고, 이 슈팅이 골대를 때렸다. 튀어나온 공을 베르너가 헤더로 마무리했다. 첫 슈팅이 골대를 강타해 공격포인트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캉테는 자신이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빛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경기 뒤 유럽축구연맹(UEFA)은 캉테를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로 선정한 뒤 “엄청난 영역을 커버했다”며 수비적으로 극찬한 뒤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도 훌륭했다”고 공격에서의 활약도 거론했다.

 

이날 승리로 첼시는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던 2011~2012시즌 이후 9년 만에 정상에 도전하게 됐다. 상대는 하루 전 파리 생제르맹(PSG)을 누른 같은 EPL의 맨체스터시티다.

 

아울러 한 시즌 전 PSG를 UCL 결승으로 이끈 토머스 투헬 감독은 서로 다른 팀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결승을 치르게 됐다.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는 PSG의 첫 UCL 결승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도 팀 수뇌부와의 마찰 속에 시즌 초반 전격 경질됐고, 이후 지난 1월 리그 9위에 처져 위태로웠던 첼시에 부임했다. 투헬의 신출귀몰한 전술 속에 첼시는 이후 무패가도를 달리는 등 환골탈태해 리그에서는 4위권에 안착했고, UCL에서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됐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