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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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5월은 반성의 달

각종 기념일·행사 많은 5월
왜 가족과 함께하기 힘들까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아름다운 시 읽어주면 어떨까

5월에는 그러잖아도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행사도 많은데 개인적으로 몇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가족의 일들이 있다. 어머니 생신도 5월이고 동생 두 명의 결혼기념일도 그렇다. 그래서인가 나는 5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이번 가족모임에는 편한 얼굴로 시간을 낼 수 있을까? 그 기념일들을 잊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옷장, 서랍장이 있어서 내가 매일 드나들다시피 하는 작은방의 가족사진들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동생들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고 물론 나도 끼어 있지만 그날 내가 어땠는지를 잊을 수 없다.

동생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공교롭게도 나는 원고 마감에 쫓기고 있었다. 그 결혼식들보다 나에게는 원고를 무사히 마감하는 게 더 중요했고, 당일에는 간신히 시간에 맞춰 식장으로 달려갔었다. 사진 속의 내 표정은 내 일 외엔 관심이 없는 게 너무나 역력해 보인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괜찮은 소설을 발표했는지는 모른다.

조경란 소설가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대작가가 돼 있을 텐데. 몇 년 전 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어린 조카들, 제부들까지 온 가족이 처음 해외여행을 떠날 때도 나는 빠졌다. 실망한 가족들은 여행을 떠났고, 나는 나의 이기심으로 만들어낸 시간 동안 별다를 게 없는 일들을 하며 지냈다. 가끔, 그 일을 후회하곤 한다. 가족의 몇 가지 사정상 어쩌면 그때처럼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나게 될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번 달에도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강의를 한다는 이유로 어머니 생신 때 나는 작업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고 조카들에게는 어린이날 메시지 한 통도 보내지 못했다. 도대체 왜 매년 5월에는 이렇게 바쁜 걸까 싶어 달력을 넘겨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알아차리고 말았다. 5월마다 시간이 없다고 느끼고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이유는 지난달에 해야 할 일들을 미뤄두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문장으로, 또는 명명해 두길 좋아하는 나는 1월은 새 마음의 달, 2월은 준비의 달, 3월은 시작의 달, 4월은 추진의 달, 이런 식으로 정해두고 있다. 그 추진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으니 5월에는 당연히 쫓기고 만다. 그래서 5월은 반성의 달. 그 이유도 분명해졌다. 미뤄둔 일 때문에 가정의 달에 가족과 보낼 시간을 마음 편히 내지 못하는 거라고.

얼른 일어나 동네 꽃집에 가서 붉은 카네이션 한 다발을 사다 식탁에 꽂아두었다. 생신날을 보내러 어머니가 동생네 가고 없어서인지 집이 텅 빈 듯하다. 식탁에 앉아서 “얼마나 늘어나려고 해요? 엄마”라고 시작되는 임지은 시인의 시 ‘밴딩 엄마’를 다시 찾아 읽는다. “고무줄로 된 바지를 입고/ 흘러내리는 생활을 추켜올리는 엄마……” 나는 또 이런 문장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엄마에겐 내가 너무 많아서 이 꿈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없다가 좋아하게 된 작가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가족에 관한 자전적 책을 썼다는 점이다. 필립 로스의 경우에는 투병하는 아버지를 돌본 후 쓴 산문집 ‘아버지의 유산’을 읽고 더 존경하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의 손을 쥔 채 아버지를 돕고 싶지만 아버지에게 가닿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을 할 때의 그 대작가가 얼마나 솔직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던가. 델핀 드 비강은 “다시 붙이고 대충 고쳐 놓았지만 사실은 고칠 수 없는 물건 같은 존재가 된” 아픈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충실히 썼다.

이런 소설과 시를 읽었으면서도 배운 걸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니. 어머니가 동생 집에서 돌아오면 이 시를 읽어드릴까. 어쩌면 내 어머니가 바라는 건 이렇게 식탁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한집에 살면서도 그래본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가족에게도 이 작은 일이 가장 큰 일상의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을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역시 나에게 5월은 반성의 달이다.

 

조경란 소설가